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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성폭력·보이스피싱…1500여명 주민등록번호 바꿨다

중앙일보

입력

주민등록번호[중앙포토]

주민등록번호[중앙포토]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봐 매일 두려웠어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인 A씨는 개인정보 유출로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려왔다. 가해자가 A씨 신상을 유출한 탓에 혹시 개인정보가 악용될 것도 두려웠다. 고민하던 끝에 A씨는 이름을 바꾸고, 주민등록번호도 바꿨다. 주민등록번호 변경 제도를 도입한 지 3년이 됐다. 행정안전부 산하에 2017년 5월 30일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가 설치됐다.

28일 행안부에 따르면 위원회 설립 후 지난 26일까지 3년 동안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사람은 1500여 명에 달한다.

주민등록번호를 바꿔야만 했던 사람들

주민등록번호는 생년월일 등 13자리로 만들어져있다. 1968년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받게 되는 이 번호는 개인정보의 집약판이다. 하지만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디지털 범죄 등에 노출된 피해자들에겐 주민등록번호는 고민거리였다. 노출된 주민번호 때문에 이사를 하여도 가정폭력·디지털범죄 등에서 헤어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별도로 위원회를 설치하고 신청자에 한해 주민번호를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지난 3년간 접수된 변경신청은 총 2405건. 이 가운데 2088건에 대해 심사가 이뤄져 1500여건의 변경이 허가됐다. 나머지 317건은 심사가 진행 중이다.

유형별로는 보이스피싱이 36.6%(550명)으로 가장 많았다. 신분도용을 당했거나(21.8%·327명) 가정폭력(21.2%·319명)으로 주민번호를 바꾸겠다고 신청한 사람이 많았다. 다음으로는 상해나 협박을 당해 주민번호 변경신청을 한 경우(11.3%·170명)와 성폭력(4%·60명)이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23.8%로 가장 많았고, 서울이 23.4%로 2위를 차지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68.1%로 남성(31.9%)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진 연합뉴스TV

사진 연합뉴스TV

88세부터 2개월 아기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20~30대가 654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론 40~50대가 548명으로 뒤를 이었다. 최고 연령자는 88세 어르신이었다. 우체국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에게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돼 재산 피해를 입어주민번호를 바꿔 달라는 신청을 냈다. 최소연령자는 생후 2개월 아기였다. 부모님의 결혼 반대에 부딪힌 여성 B씨는 홀로 아기를 낳았다. 결혼 반대 과정에서 조부모가 여성 B씨에게 폭력을 행사하자 극심한 공포에 시달린 B씨는 아기와 함께 주민등록번호 변경 신청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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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번호를 바꾸고 싶다고 누구나 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범죄피해와 같은 사실이 소명되어야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번호를 새로 부여받을 수 있다. 주민등록법에 따르면 번호 유출로 생명이나 신체, 재산 등의 피해를 입거나, 성폭력·성매매, 가정폭력 피해 등으로 번호 유출로 피해를 보거나피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번호를 바꿀 수 있다. 13자리가 모두 새롭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뒤 6자리 번호만 달라진다.
번호 변경 신청을 하면 통상 소요되는 기간이 6개월에 이르렀다. 'n번방 사건'처럼 일부 디지털 범죄 피해자에 한해 이틀만에 변경해준 사례가 있다. 하지만 2주에 한 번 위원회가 열리는 등 변경 결정까지 6개월이 걸려 피해자 구제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는 결정 기한을 절반인 3개월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또 '방문 신청'으로 접수가 가능했던 것을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도록 관계법령 개정에도 나서기로 했다.

홍준형 주민등록변경위원회 위원장은 "주민등록번호 유출로 피해를 입은 분들은 유출된 번호가 악용돼 2차 피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언제든지 위원회 문을 두드려달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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