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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1위,유튜브 1억 뷰…데뷔 20년 이루마의 역주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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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빌보드 클래시컬 차트에서 11주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이루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국 빌보드 클래시컬 차트에서 11주째 1위를 지키고 있는 이루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의아했다.” 작곡가 이루마가 지난 2월 빌보드 클래식 앨범 차트 1위에 진입하고 들었던 생각이다. 이루마의 앨범 ‘더 베스트 레미니센트(The Best Reminiscent 10th Anniversary)’는 2월 1위에 오른 후 이달 20일 현재까지 머물고 있다. 중간에 2위로 내려왔던 시기를 제외하면 도합 11주째다. 미국 내에서의 디지털, 실물 앨범의 매출에 유튜브 조회 수를 더한 결과다.

이루마의 빌보드 1위는 이례적 역주행이다. 이 앨범은 2011년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나왔기 때문이다. 수록곡은 더 오래된 음악들이다. 특히 1위를 견인한 두 번째 트랙 ‘리버 플로스 인 유(River flows in you)’는 2001년 이루마가 데뷔하면서 낸 곡이었다.

“2001년 발표했을 때는 다른 곡에 밀려서 별로 알려지지 못했던 음악이었다.” 19일 만난 이루마는 “2006년 한 유튜버의 편집으로 이 곡이 갑자기 주목을 받았다” 고 했다. 유튜버가 영화 ‘트와일라잇’의 한 장면에 ‘리버 플로스 인 유’를 입혀 영상을 만들어 올렸고 이후에 나온 유사한 영상까지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디지털 음원과 앨범 판매가 꾸준히 오르기 시작했고 빌보드 1위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루마는 “트와일라잇'에는 나오지 않았던 음악인데 마치 나왔던 것처럼 알려지면서 희한하게 인기를 얻게 됐다”며 "영화 원작 책의 작가 스테파니 메이어에게 전화까지 받았다"고 했다.

빌보드 클래식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이루마.

빌보드 클래식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이루마.

이와 별개로 이루마가 직접 연주한 ‘리버 플로스 인 유’의 유튜브 동영상은 현재 조회수 1억을 넘었다. 영국의 클래식FM 매거진은 “영화 ‘트와일라잇’에 실제로는 드뷔시 ‘달빛’이 들어갔지만 이루마가 더 유명해졌다”며 ‘리버 플로스 인 유’에 대한 분석 기사를 내기도 했다. 이루마는 “이 곡은 화음 진행이 상당히 독특하다”며 “첫 테마를 들어보면 단조 코드 한번 이후 모두 다른 조의 장조로 전개된다”고 했다. “아마도 이런 진행 때문에 사람들이 몽환적으로 느끼지 않았나 싶다. 슬프지도 밝지도 않으니까.”

내년 데뷔 20주년인 이루마는 대중성에 대한 직관이 뚜렷하다. “사람들이 어떤 멜로디를 좋아할지는 불분명하지만, 대중적인 화음 진행은 어느 정도 규칙이 있다. 이런 화음 위에 선율을 새롭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익숙한 음악의 신선함이다. “나도 모르게 들어본 듯한 멜로디가 만들어지면 바로 버린다. 규칙을 지키면서도 어디엔가 변형을 줘서 꼬아야 한다.”

하지만 대중적이고 듣기 편하며 쉬운 음악만 쓴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아마 내가 만들고 싶은 대로 음악을 만들면 아무도 안 들어줄 것”이라고 항변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완전히 현대적이고 전위적인 음악이다.” 이 ‘꿈’을 보여주는 것이 2006년 나왔던 앨범 ‘H.I.S. Monologue’ 다. 20세기 아방가르드의 상징인 작곡가 존 케이지식 자동 피아노를 구해,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쓰는 현대적인 음악들이 나왔다. “이루마는 쉬운 음악을 해, 대중적인 음악가야 하면서 폄하하는 듯한 평을 받을 때마다 힘들어서 진짜 내 음악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했던 미친 짓”이라고 했다.

지금도 대중이 난해하게 여길 아이디어는 많다. 그는 “다시 한번 현대음악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강하지만, 대중성도 버릴 수는 없다”며 “게다가 딸이 6학년이고 한창 자랄 때라 현실적으로 생활 감각을 버릴 수 없다”며 웃었다. 그 대신 음악이 아닌 ‘사운드’에 집중하고 있는 현대음악 최전선의 작곡가들을 탐구한다. “이제는 음색의 시대가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작곡가들이 어떤 실험을 하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보고 있다.”

유튜브에서 1억 뷰를 돌파한 이루마의 '리버 플로스 인 유'.

유튜브에서 1억 뷰를 돌파한 이루마의 '리버 플로스 인 유'.

이루마 음악의 뿌리는 10대 시절 공부했던 영국 퍼셀 음악학교에서 생겼다.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는데 연습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내 마음대로 음악을 만들어 치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와서 곡이 너무 좋다며 악보를 달라고 해 ‘작곡가가 더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15세에 시작한 그의 작곡은 바흐ㆍ헨델ㆍ베토벤과 같은 클래식 풍이었다고 했다. 이처럼 클래식에서 시작한 이루마의 음악들은 ‘21세기의 공통 피아노 교본’이라 불릴 정도로 입문자들이 많이 찾지만, 실제로 연주해보면 그만큼 쉽지는 않다.

이루마는 지난해 이탈리아 남부에서 만든 음악 ‘룸 위드 어 뷰(Room with a view)’를 이달 발표했다. 내년엔 20주년을 맞아 음악의 몸집을 키운다. “지금까지는 피아노 음악으로만 알려졌지만 여러 악기가 함께하는 곡을 쓰고 싶다. 또한 내 음악 대다수가 드라마ㆍ광고 같은 상업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완결성이 떨어지는 걸 안다. 이제는 콘서트용으로 기승전결이 뚜렷한 작품을 많이 내고 싶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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