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한 무대에 서는 현악기 연주자들. 왼쪽부터 이재형ㆍ이우일(바이올린), 이정현(첼로), 이승원(비올라), 강승민ㆍ이호찬(첼로).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명의 평균 나이는 28.5세. 하지만 현악기를 연마한 기간은 20~23년이다. 바이올린ㆍ첼로ㆍ비올라 네 줄 악기를 10살도 되기 전부터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우일(31)ㆍ이재형(28), 비올리스트 이승원(30), 첼리스트 강승민(33)ㆍ이정현(29)·이호찬(30)이다. 이들은 올 여름 한 무대를 계획하고 있다. 현악기만 등장하는 독특한 무대의 제목은 ‘현악본색’. 사현(四絃) 위에서 살아온 삶은 어떨까. 여섯 명에게 물었다.
- 악기는 어떻게 시작했나.
- “처음에는 성악과 피아노를 했는데 성악 선생님이 첼로가 더 잘 맞겠다며 추천을 해줬다. 이런 악기가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는데 피아노와 첼로로 같은 대회에 출전해 첼로로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 피아노는 노력을 해서 연주해야했는데 첼로는 자연스럽게 해도 되는 것처럼 편했다.”(이정현)
- “열 한살에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내한 독주회를 봤다. 앙코르를 9곡이나 했는데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소리가 정말 좋아서 첼로를 꼭 하고 싶었다.”(강승민)
- 현악기는 피아노 같은 건반 악기와 달리 손가락을 1㎜만 옮겨도 음정과 음색이 달라진다. 덕분에 색채가 풍부하지만, 연주자로서는 긴장의 연속일 듯하다.
- “바이올린이 아무래도 현악기 중에 가장 작고 정교해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예민하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맞는 이야기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소프라노 같은 면이 있고, 첼리스트들은 성격이 둥글고 여유로운 경향이 있다.”(이재형)
- “우리 집은 삼남매가 서로 다른 현악기를 연주한다. 첫째인 내가 첼로, 둘째 이재형이 바이올린, 셋째 서현이 비올라를 골랐다. 셋이 함께 연습할 때면 재형이가 음악적인 의견을 내면서 리드하고 내가 거기에 동의하면 비올라하는 막내는 그냥 따라오는 때가 많다.(웃음)” (이호찬)
- “타고난 성격대로 악기를 고르는 면도 있겠지만, 음악 내에서 악기의 역할에 맞춰 성격이 변화하는 경향도 있다. 바이올린은 앙상블 안에서도 음악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가야하는 일이 많아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주장을 잘 하는 편이다.”(강승민)
- 서양 음악의 악기군 중에 현악기가 가장 ‘소리다운 소리’를 처음 내기가 힘들다. 건반 악기, 관악기에 비해 연습량도 현저히 많지 않나.
- “어린 시절 현악기 연습은 거의 도 닦는 일 같았다. 인내가 필요했다. 어릴 때는 하루에 12시간까지도 연습했던 적이 있다. 시간을 재는 것도 무의미 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부어서 안 펴졌던 때도 많다. 연습을 안 하더라도 악기를 눈 앞에 두고 무의식 중에라도 연습을 염두에 두려고 했다.”(강승민)
- “어릴 때는 테크닉적인 것을 만들기 위한 연습을 많이 했다. 비브라토(현을 짚은 손을 떨어서 소리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 활쓰기에 따른 음색 변화를 많이 실험해 봤다. 하지만 지금은 소리에 집중을 많이 한다. 요즘의 연습은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이우일)
- 이번에 함께하는 무대에는 현악기끼리 함께하는 다양한 곡을 골랐다. 작곡가들은 역사적으로 현악4중주 작품에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왔다. 하이든에서 시작해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20세기 이후 현대 작곡가들이 그랬다. 작곡가들은 현악기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을까.
- “소리가 완벽히 섞일 수 있는 조합이다. 현악기만의 앙상블은 합쳐졌을 때의 소리가 가장 이상적이다. 작곡가들은 늘 소리의 결과를 상상하기 때문에 현악 앙상블을 동경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 같은 음정을 낸다고 해도 음색을 바꾸면서 다양한 감정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현악기에 있었기 때문에 작곡가들에게도 매력적이었을 것이다.”(이승원)
- 이렇게 어렵고 험난한 사현 위의 삶을 계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현악 연주자로서의 생활은 어떤 면에서 매력적인가.
- “현과 활털을 마찰시켜서 소리가 나면 이게 내 목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내 소리를 내는 기쁨이 있다.”(이승원)
-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한 과정은 자연스러웠지만 공부할수록 끝이 없고 어렵다. 그 점이 바로 매력이다.”(이재형)
- “어렵기 때문에 자기수련하듯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이정현)
이들에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ㆍ김재원, 비올리스트 이서현이 더해진 총 9명의 현악 연주자들은 8월 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하루 세 번 공연을 연다. 첫 순서인 낮 12시엔 바흐의 무반주 첼로ㆍ바이올린 작품 연주, 오후 3시 30분에는 첼리스트 이정현의 독주, 오후 7시 30분엔 9명이 모두 출연해 독주부터 8중주까지 선보이는 무대를 마련했다. 이들은 “현(絃)은 곧 선(線)이다”라며 “곡선과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다양한 색채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연주자 프로필
강승민(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에서 석사, 최고연주자 과정 졸업.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 5위 입상.
이승원(비올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 학사, 석사, 최고연주자 과정 최우수 졸업.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국제 지휘 콩쿠르 우승 후 지휘자로도 활동 중.
이우일(바이올린): 한국예술종합학교, 뮌헨ㆍ자르브뤼켄ㆍ바젤 음대 석사, 최고연주자 과정 졸업.
이재형(바이올린): 한국예술종합학교, 쾰른 국립음대 석사 및 최고연주자 과정 졸업. 룩스 트리오로 ARD 국제 콩쿠르 실내악 부문 한국팀 최초 3위 입상.
이호찬(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함부르크ㆍ뤼벡ㆍ잘츠부르크의 음대 석사 및 최고연주자 과정 졸업.
이정현(첼로): 윤이상 국제 콩쿠르 우승. 브뤼셀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협연.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