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심화…응급실 ´야전병원´ 방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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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전임의 파업에 이어 교수들마저 외래진료를 거부, 12일 각급 병원에서 의료공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문을 연 병원을 찾아 헤맸고 일부 동네 병.의원과 국.공립병원, 보건소 등은 북새통을 이뤘다.

◇ 진료공백 심화 = 대부분의 병원들이 이날 오전 근무만 해 한산했으나 일부대형병원 응급실에는 환자들이 몰려 `야전병원´을 방불케 했다.

서울대병원은 15개 과중 내과.신경외과.산부인과.신경과.가정의학과 등 5개 과가 외래진료를 사실상 중단한 가운데 외래환자 수가 평소보다 30% 이상 줄었다.

그러나 이 병원 응급실에는 58개 병상을 훨씬 초과한 1백여명의 환자들이 몰려진료대기실과 복도에도 간이침대를 놓고 누워 진료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연세대 부속 신촌 세브란스병원도 이날부터 산부인과.비뇨기과 등 일부 과에서 진료거부에 돌입했으며 나머지 과에서도 14일부터 외래진료를 전면 중단할 예정이어서 진료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의도 성모병원의 경우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45개 병상을 갖춘 응급실이며 응급실에서는 가운을 벗은 전공의 3명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근무중이다.

고려대 구로병원에서는 이날 `14일부터 교수들이 진료거부에 나서기로 했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병원 곳곳에 붙여졌다.

◇ 환자들 불안 고조 = 환자들은 상당수 병원의 전문의(교수) 들이 외래진료에서 철수하자 극도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관절염으로 고려대 구로병원을 찾은 김모(64) 씨는 "의사들은 상류층에 속하는데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환자들을 돌보지 않는 것은 의사의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의사들이 국민을 위해 파업을 한다는 명분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난소암수술을 받고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김모(56.여) 씨는 "`의사가 없으니 응급실로 가라´는 말만 들었다"면서 "입원을 해야 하는데 의사들의 파업으로 진통제처방도 못받으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걱정했다.

5살난 딸이 고열에 시달려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은 정모(37) 씨는 "의사들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파업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딸이 열이 나 병원을 찾았는데 만약 병세가 심했다면 의사들과 싸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김모(42) 씨는 "아내가 3일전부터 아팠으나 의사들이 파업을 해 참고 버티다 오늘 병원을 찾게 됐다"면서 "주위에도 아픈 사람들이 있는데 크게 아프지 않으면 그냥 참고 집에서 지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환자 몰리는 국.공립병원ㆍ보건소 = 대학 및 종합병원의 진료가 차질을 빚으면서 환자들이 국.공립병원과 보건소로 몰려 지난 6월 `1차 의료계 파업´ 때와 비슷한 상황을 빚고 있다.

국립의료원은 이날 초진환자의 경우 40∼50%, 응급실 환자는 20% 가량 늘었다. 의료원측은 이에 따라 외래환자에 대한 연장근무에 돌입하는 한편 응급실 병상추가, 군의관 투입 요청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의료원 관계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환자들이 찾아오고 있다"면서 "상당수 병.의원들이 진료를 하지 않는데다 문을 연 병원도 토요일이어서 대부분 문을 닫기 때문에 외래환자들을 위해 연장근무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군 창동병원도 이날 평소보다 10∼20% 가량 많은 외래환자들이 찾아와 원외처방전을 받아갔다.

서울 시내 각 보건소에서도 이날 환자들이 평소보다 20% 가량 늘어났으나 시설 및 장비 미비 등으로 적절한 진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일부 동네 병.의원 북적 = 대한의사협회 지침에 따라 개업의들도 휴.폐업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정상적으로 진료를 실시한 동네 병.의원들에는 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동작순천향 병원에는 평소보다 30% 가량 많은 환자들이 찾아 붐볐고 병상도 거의 차있는 상태다.

서울 구로구 구로동 구로성모의원도 이날 오전중에만 50명의 환자를 진료, 평소보다 약 60%가량 환자수가 늘었다.

또 병원폐업 여파로 한방병원과 한의원 등에서도 외래환자들이 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K한의원 관계자는 "환자들이 이번주 들어 평소보다 15% 이상 늘어난 것 같다"면서 "병원폐업으로 감기나 고열 환자들도 한의원을 많이 찾고 있다"고 전했다.(서울=연합뉴스) 김종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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