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내분…협상창구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의료계가 심각한 내부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11일부터 시작한 재폐업을 두고 대한의사협회의 집행부인 상임이사회와 의.약분업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 .전공의.개원의 등이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상임이사회와 개원의 등은 지난 10일 정부가 발표한 ´의료계 폐업 종합대책´ 에 대해 대체로 수용하는 입장으로 알려졌지만 의쟁투와 전공의들은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의료계 내부의 입장 차이는 10일 오후 서울의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쟁투 회의에서 그대로 표출됐다.

정부안 수용과 전면 폐업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인 회의는 3시간이 넘도록 격론이 끊이지 않았다.

상임이사회는 별도의 회의를 열고 "정부안 수용과 대화를 통한 협상" 을 주장했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상임이사들은 7만 의사의 신뢰를 상실했다" 며 "의협 대표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니 사퇴하라" 고 요구했다.

한 때는 상임이사를 제외하고 지도부를 재구성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들은 또 "의쟁투 또한 재폐업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며 "의쟁투 중앙위원에 의대생들도 참여하겠다" 고 주장했다.

의쟁투는 이에 반대 입장을 보였고 전공의들이 반발, 폭언을 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사꾸라는 물러가라´ 는 등의 발언도 나왔다고 한다. 의료계의 단일한 목소리 마련을 위한 비상대책기구 출범도 무산됐다.

의료계의 내분은 현재의 재폐업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전공의들은 지난달 29일 상임이사회의 만류를 뿌리치고 파업을 선언했다. 이어 전임의들이 지난 7일 파업에 가세했다. 상임이사회가 지난달 말 열린 임시대의원 대회의 폐업 결정을 유보한데 따른 반발이었다.

교수협의회가 그 뒤를 이었다. 연대.서울대.가톨릭대 교수들이 10일 자체 결정에 의해 폐업에 참여한다고 선언한 것. 상임이사회는 결국 10일 오후 늦게 재폐업을 선언했다.

의협의 한 상임이사는 "상임이사회는 현재 의료계의 목소리를 통일시키거나 대정부 협상안을 마련할 수 있는 지도력을 상실했다" 고 털어놨다.

상임이사회에 참석한 한 이사는 "최악의 경우 조직이 와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고 말했다. 재폐업 이틀째인 12일 예정된 전국의사대회도 상임이사회와는 별도로 의쟁투와 전공의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의료계가 분열양상을 보이자 정부도 협상 파트너를 찾지 못해 사태해결에 애를 먹고 있다. 최선정(崔善政)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9일 수감 중인 김재정 의협 회장과 한광수 회장 직무대행 등을 만났다.

10일에는 의쟁투와 전공의들을 만나 각각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타협점을 찾지 못했고 11일 재폐업은 강행됐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도 "법적 대표성이 있는 의협 상임이사회가 제자리를 찾아야 재폐업의 장기화를 막고 국민들의 불편을 해결할 수 있을 것" 이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료계가 내분을 추슬러 단일 대화창구를 마련해야 신속한 사태해결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정용환.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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