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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또 ‘화웨이-애플’ 인질 잡고 충돌…애플 보복 당하나?

중앙일보

입력

미국 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강력한 추가 제재에 나서면서, 중국이 애플에 대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중 정부가 또다시 양국 정보기술의 상징격인 화웨이와 애플을 인질로 잡고 맞붙는 양상이다. 중국 정부가 애플에 대한 보복을 실행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에서 애플이 갖는 경제적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미국 정부의 조치가 워낙 강해 중국 정부도 가만히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미국 화웨이 추가 제재에 발끈한 중국  

17일 로이터통신과 중국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은 중국 기업에 대한 불합리한 압력을 즉각 중단하기를 촉구한다”며 “중국은 자국 기업의 합법적 권리를 결연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중국 정부가 애플과 퀄컴, 보잉 등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에 올릴 준비가 됐다”고 보도했다.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즈는 16일 사설에서 ‘전쟁(War)’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트럼프 행정부의 위협은 선거 운동 전략의 일부”라면서도 “중국은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완전히 분리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15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미국의 기술로 제작된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환구망 캡처]

미국 정부는 15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미국의 기술로 제작된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 환구망 캡처]

"화웨이 반도체 원천 차단" vs "애플 블랙리스트에"  

앞선 15일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가 미국 기술로 제작된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수출 규정 개정에 나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화웨이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해 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 규정을 통해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 기업도 화웨이에 특정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카드가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 이른바 ‘블랙리스트’다.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외국 기업은 중국 내 사업 허가가 취소되거나 중국 시장 내 유통이나 접근이 금지되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 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그럴 때마다 거론된 대표적인 미국 기업이 바로 애플이다.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한 여성이 애플 로고가 그려진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한 여성이 애플 로고가 그려진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1차 미·중 분쟁 땐 애플에 대한 보복 없어  

하지만 2018년 초 촉발된 미·중 무역분쟁과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 이후에도 애플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없었다. 오히려 애플과 화웨이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나서 양국 정부를 말리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6월 화웨이의 창업주인 런정페이 회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베이징에서 애플에 대해 보복을 할 경우, 가장 먼저 항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슷한 시기에 애플의 팀 쿡 CEO는 CBS와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가 애플을 타깃으로 한 적이 전혀 없다”며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애플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하지 말아 달라는 서한을 보내고, 팀 쿡은 직접 백악관을 찾아 이를 설득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미국에 수입되는 중국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조치가 시행됐을 때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은 관세 대상에서 빠졌다.

애플 보복 조치는 미·중에 모두 타격  

이번에 어떨까. 이번 미국 정부의 조치에 중국 언론은 격앙된 반응이지만, 중국 정부가 즉각 애플에 대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 애플 제품의 90%는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이와 관련된 중국 내 일자리가 약 500만명에 이른다. 중국의 보복으로 애플의 생산·판매가 차질을 빚고, 나아가 생산기지 이전에 나설 경우 중국은 고용과 산업생태계에 충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애플 역시 피해가 막심하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중국에서 애플 제품의 유통이 금지될 경우 애플의 매출은 최대 30% 감소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 등을 향해 “해외에서 생산하는 미국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지만, 애플이 생산기지를 단기간에 미국이나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화웨이가 미국의 추가 제재 조치 직후 자사 사내망에 올린 전투기 사진.

화웨이가 미국의 추가 제재 조치 직후 자사 사내망에 올린 전투기 사진.

환구시보, "미국 기업 공포 느끼게 할 것"  

그럼에도 중국 정부가 이번에는 가만히 있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며 중국 IT 굴기의 상징으로 키운 회사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미 상무부의 추가 조치는)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며 "만약 미국이 정말로 한계선을 넘는다면, 미국 기업들이 우리(중국)의 힘과 결의에 공포를 느끼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웨이 역시 사내 인트라넷에 총탄을 맞은 전투기 사진을 올리며 '항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앞서 에릭 쉬 화웨이 부회장은 지난 3월 말 연간보고서 발표 자리에서 "중국 정부가 화웨이가 도살되는 것을 방관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 정부도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의 모습. [연합뉴스]

중국 위안화와 미국 달러의 모습. [연합뉴스]

미·중 샌드위치 친 낀 한국기업 전전긍긍 

화웨이에 대한 추가 제제와 애플의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국내 반도체·전자·IT 기업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화웨이와 애플은 국내 기업들의 경쟁자이자 고객이다. 양사가 타격을 받으면 당장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시장 등에선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통신 장비·부품을 공급하는 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해 오던 대만 TSMC가 미국 행정부의 압박에 약 15조원을 들여 애리조나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미·중 분쟁이 코로나19와 더블어 글로벌 IT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이번 미국 상무부 개정안의 유예기간(120일) 동안 미·중이 관계가 더 악화하는지, 새로운 합의에 이를 수 있는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국내 기업들은 코로나19 여파에 2차 미·중 무역분쟁까지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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