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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동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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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정권 감독의 ‘동감’이 20주년을 맞이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된다. 1979년과 2000년을 사는 두 사람이 21년의 시차를 넘어 아마추어 무선통신(HAM)으로 교신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또 다시 20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보는 느낌은 의외로 신선하다. 세기말을 갓 넘어선 2000년의 한국영화는, 소소한 재미에 충실했고 아기자기하며 감성적이었다. 당시 신인급이었던 유지태·김하늘·하지원의 연기는 아직은 풋풋하고, 신인 감독의 거칠고 투박한 표현도 종종 눈에 띄지만, ‘동감’엔 지금 한국영화는 지니지 못하는 어떤 순수성이 있었다.

5/15 그영화이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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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순수성은 종종 인상적 장면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동감’(同感)인 것은 시간대가 달라도 같은 것을 느끼는 관계를 드러내기 때문. 1979년의 소은(김하늘)과 2000년의 인(유지태)은 대학 시계탑 앞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초월해 서로를 느끼며, 이 감성은 두 사람의 이미지를 겹치면서 화면이 전환되는 ‘디졸브’ 방식으로 전개된다. 요즘 같으면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예스러운 방식이지만, 지금이라면 훨씬 더 화려한 스타일과 빠른 편집과 과장된 음악으로 처리됐겠지만, 고전적인 전환 방식으로 처리된 이 장면이 좋은 건 MSG 없이 감정을 전달하려는 소박한 의도 때문이다. 눈을 맞으며 21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서로를 느끼는 두 사람. 한국 멜로드라마의 숨은 명장면 아닐까 싶다.

김형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