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번 미·중 샌드위치?...이번엔 대만 WHO 옵서버 이슈 불거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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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 최고의결기구인 세계보건회의(WHA)에 대만이 '옵서버(Observer·참관국)'로 참여하느냐를 놓고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또다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미 의회가 오는 18~19일 화상회의로 열리는 WHA에 대만의 '옵서버' 참여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한국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미 의회, 한국에 공식 서한 보내  

미 상·하원 외교위원회는 지난 8일 대만의 WHO 참여를 지지해달라는 서한을 전 세계 50개국 정부에 보냈다. 서한을 보낸 국가에는 한국도 포함됐다.

'옵서버'는 발언권은 있지만, 의결권은 없는 참여국을 말한다. 대만은 1971년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 자격을 잃은 이후 사실상 유엔 산하 기구인 WHO에서도 쫓겨나다시피 이탈했다. 중국과의 화해 무드가 조성된 2009년 WHO 옵서버 자격을 얻었지만, 2016년 반중 성향이 강한 민진당이 집권하면서 그 자격을 잃었다.

최근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연일 제기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와 미 의회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대만 이슈'를 또다시 꺼내 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대만이 '방역 모범국'으로 주목받자, 이를 명분 삼아 WHO의 옵서버 자격 부여를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외교부, "서한 수령 여부 확인할 수 없다"  

외교부는 14일 '대만의 WHA 옵서버 참여를 지지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는 미 의회의 언론 발표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 관례상 주고받는 서한은 양쪽이 합의하지 않으면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선 말씀을 안 드리겠다"고 말했다. 서한의 내용은 물론 서한의 수령 여부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WHA 옵서버 참여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묻자 이 당국자는 "WHO 규정상 옵서버는 사무총장의 초청이 있어야 최종적으로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11일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대만을 WHA 옵저버로 초청할 권한이 사무총장에게는 없다"며 회원국들에게 공을 넘겼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코로나 19 대응 과정에서 과도한 친중 행보로 그동안 미국의 강한 비판을 받아 왔다. [로이터=연합뉴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11일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대만을 WHA 옵저버로 초청할 권한이 사무총장에게는 없다"며 회원국들에게 공을 넘겼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코로나 19 대응 과정에서 과도한 친중 행보로 그동안 미국의 강한 비판을 받아 왔다. [로이터=연합뉴스]

◇美 동맹국 줄줄이 찬성…한국은? 

미 의회의 서한을 받은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은 이미 대만의 옵서버 자격 부여에 찬성 입장을 밝힌 상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이미 지난 2월 대만의 WHO 옵서버 자격 문제에 대해 "국제적 감염 대책 등에서 지리적 공백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며 지지 입장을 밝혔다.

반면 한국은 난처한 입장이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이후 경색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는 올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방한을 강력 추진 중인데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릴 순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전화 통화한 사실을 설명하면서 "올해 중 방한하는 데 대한 굳은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는 시 주석의 발언까지 공개했다. 하지만 동맹국인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사실상 시 주석의 연내 방한은 사실상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8~19일 열리는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보건총회(WHA)에서 한국 대통령 최초로 기조연설을 맡게 됐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8~19일 열리는 세계보건기구(WHO) 세계보건총회(WHA)에서 한국 대통령 최초로 기조연설을 맡게 됐다. [연합뉴스]

외교부 관계자는 "옵서버 참여 문제는 회원국들의 컨센서스(Consensus)가 필요해 하나의 국가라도 반대할 경우 결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중국이 반대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어 "최근 모든 국제회의가 화상회의로 전환되면서 의결이 필요한 절차가 진행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만의 WHO 옵서버 참여에 대한 판단을 최대한 유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유진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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