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섹스, 꽃, 그리고 사랑

중앙일보

입력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룹섹스에 관한 이색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해 충격을 주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룹섹스를 해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남성의 73%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여성은 그보다 높은 무려 76%가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수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여성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그룹섹스를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12%에 불과해 실제 경험해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수치상의 문제를 떠나 그룹섹스에 대해 이토록 많은 남녀가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한국사회 성의식의 이중적이고 중독적인 성향을 단면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원래 인류의 원시상태에는 소위 ‘잡혼’(雜婚), 혹은 ‘군혼’(群婚)이라는 이름으로 무리지어 성관계를 갖는 풍습이 있기는 했다. 하와이에서는 전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이런 행위들이 사회적인 풍습으로 인정받았다. 이때는 자매, 혹은 방계에서 태어난 자매들이 남성 무리와 공통적인 성관계를 갖는다.

상대 남성들의 경우 혈연관계일 수도 있지만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 그러나 이런 풍습은 단순한 성관계를 맺는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군혼, 즉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결국 그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은 모든 남성이 ‘아버지’고 모든 여성이 다 ‘어머니’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일처제가 보편화된 현대 문명사회에서는 군혼이라는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혼인이 없는 ‘무리의 섹스’란 결국 쾌락에 대한 욕망이 극도로 추구된 것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섹스중독의 폐해는 상당히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이런 류의 쾌락 추구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물론이거니와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섹스로부터의 자유’ 혹은 ‘자유로운 섹스’라는 이름으로 마치 자신들의 행위가 대단한 존재론적 의미를 지니는 양 과대포장하지만 그 실체는 빈약한 쾌락 추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한 아침 드라마에서 사랑에 대해 꽤 명쾌한 정의를 내린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꽃을 좋아한다면 꺾어서 보관하지만, 꽃을 사랑한다면 정성스럽게 잘 가꾼다.”

부부간의 사랑과 섹스도 마찬가지다. 섹스를 사랑하고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과격하고 쾌락 탐닉적인 그룹섹스에 몰입하기보다 한 사람과의 섹스를 정성스럽게 가꿔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인 지나친 금욕생활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금욕주의 역시 의학적으로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정하지 않으면 전립선이 팽창하기도 하고 때로 정액이 정낭 속에 고여 염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체의 수많은 분출물들, 즉 정액을 포함한 수분, 대·소변, 땀 등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어느 것이든 몸에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따라서 올바른 성생활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나친 섹스중독이나 금욕생활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흔히 ‘의무방어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극도로 제한된 섹스는 오히려 또 다른 병을 키우기도 한다.

충분히 섹스를 즐기되 과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섹스는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그 즐거움을 즐겁게 행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글 : 김재영 김재영비뇨기과 원장·남성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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