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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벅 되고 백화점 안되고…재난지원금, 그냥 현금은 안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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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달 25일 경기도 가평5일장에 손소독제가 준비돼 있다.  코로나19 확산차단을 위해 휴장해오던 민속 5일장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완화에 맞춰 그동안 침체 된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재개장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경기도 가평5일장에 손소독제가 준비돼 있다. 코로나19 확산차단을 위해 휴장해오던 민속 5일장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완화에 맞춰 그동안 침체 된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 재개장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지원금이 풀렸다. 이를 통해 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살리기를 해야 하는 동시에 개인의 삶도 복원해야 하는, 쉽지 않은 목표를 담았다. 이러다 보니 여러 문제점이 동시에 노출됐다.

[현장에서]

먼저 쓰는 사람의 필요보다 주는 측이 강조하고 싶은 것을 우선순위에 뒀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철학에 따라 지원금을 쓸 수 있는 곳이 달라졌다. 지급 주체의 그림자는 지역의 지원금 명칭에도 투영된다. 서울시는 지원금을 긴급재난생활비로,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으로 달리 명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구분해야 각각의 업적으로 기록하기 수월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재난기본소득’이라는 개념과 네이밍에 지분이 상당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시에선 당연히 이 명칭을 피했다.

두 단체장 모두 지원금을 주력 정책(지역화폐)과 연동한 점은 유사하다. 일종의 정책 끼워팔기다. 서울시와 경기도에 살 경우 11일부터 지급되는 국가재난지원금을 사용할 때 이 기준을 따라야 한다.

선출된 지자체장의 정책 방향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지원금의 용처를 정하면서 기준이 정교하지 않은 데다 일관성마저 없을 때 동의를 얻기 힘들다. 서울시에 왜 홈플러스에선 쓸 수 있는 긴급재난생활비를 같은 대형마트인 이마트 혹은 롯데마트에선 막았는지를 물었다. “자체 상품권을 발행하지 않는 홈플러스에서만 (생활비) 선불카드 결제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러모로 사실이 아니다. 일단 홈플러스도 자체 상품권을 발행하고 있다. 또 서울시가 주요 유통기업에 도입을 강력히 권유해 온 제로페이(서울사랑상품권)는 멀쩡히 모든 대형마트에서 결제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인데 하필 긴급재난생활비 결제가 이마트와 롯데마트에서만 문제를 일으킨다는 서울시의 답변은 팩트부터가 틀렸다.

이 밖에도 지자체의 설명할 수 없는 결정은 많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소비가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개인적인 재난 극복에 도움이 된다면, 백화점에서 밥을 먹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오히려 스타벅스는 대기업이지만 백화점 입점 식당의 대다수는 자영업자인데 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국민을 믿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민을 나름의 기준에 따라 합리적인 선택을 할,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으로 인정하질 않는 태도다. 어디서 무엇을 사야 옳은 지를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알려주고 착한 소비와 나쁜 소비를 친절히 구분해 준다.

2월 이후 코로나19로 국민들이 겪은 재난의 형태는 절대 균일하지 않다. 누군가에겐 전통시장의 단골 쌀집에서 쌀을 넉넉히 주문하는 것이 재난 극복을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핸드폰 요금이나 월세 납부가 더 절실한 사람도 있다. 처지에 따라 온라인몰에서 1+1행사를 기다렸다가 쟁여두는 간편식이 더 의미 있는 소비일 수도 있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그냥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닌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다. 그야말로, 개인이 알아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지원금을 어디에서 써야 할 지 헷갈려 생기는 혼란은 이에 비하면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다.

재난 지원금을 현금으로 준 미국의 사례를 참고로 할 만하다. 현금을 줄 경우 돈이 숨어 소비가 살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각자 사정에 맞게 쓰도록 하는 게 맞다. 기한과 사용처의 제한을 두니 지역사랑 상품권 ‘깡’이 등장했다는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당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재난 지원금 지급은 논쟁적 사안이었다. 진통 끝에 주기로 결정된 이상 앞으로의 시행착오는 줄여야 한다. 받는 사람이 쓰기에 편하고 오해의 소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두고 너무 멀리 돌아가고 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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