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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을 ‘세금 빼먹는 기계’로 쓴 한의사, 집 살때도 탈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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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의사 A씨는 환자에게 주로 현금으로 진료비를 받았다. 진료비 수입을 적게 신고해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병원 근처의 은행 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해 매달 수백만원의 현금을 개인 계좌에 넣었다. 여기에다 아버지에게 받은 돈을 보태 비싼 부동산을 샀다. 이때 증여세는 내지 않았다.

세금 덜내려 환자에 현금 받아 입금 #부동산 탈세 혐의 517명 세무조사 #자기 돈 0원으로 집 구입도 91명

김길용 국세청 부동산납세과장은 “A씨가 수억원대의 소득세·증여세를 탈루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A씨가 취득한 부동산 가격과 신고한 자금의 출처가 맞지 않는 점을 조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탈세 의심자, 부동산 살 때 자기 돈 얼마나 썼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탈세 의심자, 부동산 살 때 자기 돈 얼마나 썼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세청은 7일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탈세를 시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고액 자산가 517명을 세무조사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금융감독원을 포함한 관계기관 합동 ‘부동산시장 불법 행위 대응반’에서 통보한 279명과 국세청이 자체 조사로 선정한 238명이다.

국세청은 비교적 젊은 나이(20~30대)에 일정한 소득이 없는데도 비싼 부동산을 산 경우 증여세를 내지 않은 ‘요주의 인물’로 꼽는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자 중 절반 이상(55.3%)이 20~30대(286명)였다. 국세청은 또 주택이나 소규모 건물의 임대사업을 하는 법인을 세우면서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법인 내부 자금을 빼돌린 혐의가 있는 사람들도 주목했다. 이번에 세무조사 대상이 된 부동산 법인은 30곳이다.

세무조사 대상 중에는 자기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부동산을 샀다고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 자금조달계획서에 자기 자금을 ‘0원’으로 쓴 사람은 91명이었다. 자기 자금 비중이 10% 이하인 사람도 95명이었다.

공석룡 국세청 조사2과장은 “자기 자금 없이 부동산을 샀다면 부모 등 친인척에게 빌린 돈이 많을 수 있다”며 “차입을 가장한 증여인지 철저히 검증하고 앞으로 빚을 갚는 모든 과정을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시세보다 싼 값에 자녀에게 부동산을 팔거나 ▶부모가 자녀의 전세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증여세를 내지 않은 경우도 점검할 계획이다. 부동산을 팔 때 시세보다 비싼 값으로 본인이 대주주인 회사에 넘기는 경우도 점검 대상이다.

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투기과열지구에서 9억원이 넘는 주택을 살 때는 예금잔액증명서·소득금액증명원 같은 증빙자료의 제출이 의무화됐다”며 “국토부 등 관계기관에서 통보한 자료를 전수 분석해 탈세 혐의자를 검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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