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빔밥

중앙일보

입력

한자어로 비빔밥은 골동반(汨董飯) 이다. 어지럽힐 골(汨) 에 다스릴 동(董) 을 쓴다. 여러 가지 찬을 섞어 다스린 밥이라는 뜻이다.

비빔밥은 여러 면에서 우리 정서와 잘 부합된다.

첫째, 사람 사이의 연을 확인하는 한솥밥의 문화인 공식(共食) 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큰 바가지에 비벼 온 식구가 함께 나누어 먹으며 정을 나눈다.

둘째, ´빨리빨리´ 를 좋아하는 민족의 음식답다. 밥에 찬을 턱 얹어 썩썩 비벼먹으면 눈 깜짝할 새에 빈 그릇이 된다.

셋째, 배부르게 먹기를 좋아하는 우리 욕구를 만족시킨다. 고소하고 매콤한 맛에 금세 포만감이 느껴진다.

넷째, 무엇보다도 우리의 맛과 멋이 흐른다. 비빔밥은 나물류와 고기.버섯.달걀.튀각.묵 등의 다양한 재료에 고소한 참기름과 고추장을 버무려 맛과 영양도 뛰어나다.

흰밥 위에 올린 노랗고, 하얗고, 붉고, 푸르고, 검은 색의 조화는 정말 아름답다.

1800년대 말에 발간된 ´시의전서(是議全書) ´ 에는 처음으로 비빔밥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그 유래는 훨씬 이전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민족의 의식과 생활이 반영된 음식이므로 뿌리는 여러 갈래에서 찾을 수 있다.

비빔밥은 섣달 그믐날에 남은 음식이 해를 넘기지 않게 남은 밥과 반찬을 그릇에 모두 얹어서 밤참으로 먹었다하여 12월의 절식으로 유래되어 왔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산신제(山神祭) .동제(洞祭) 등을 집에서 먼 동구에서 행한 뒤 차렸던 제물을 신인공식(神人共食) 을 하자니 부족한 식기 탓에 그릇에 제물을 한데 섞어 음복할 수 밖에 없었을 듯하다.

농경문화가 낳은 음식이기도 하다.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다가 그릇도 많이 필요 없고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비빔밥이어서 발달하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서민 음식의 특성을 가진 비빔밥은 우리 나라 전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지역마다 생산되는 산물로 만든 향토 음식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전주비빔밥. 콩나물과 육회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전주 지방에서는 쥐눈이콩이라고도 하는 서목태로 뿌리가 짧고 연하고 통통해 씹히는 맛이 좋은 콩나물을 특히 잘 키운다.

쇠머리를 곤 물로 밥을 짓는데 뜸이 들 무렵 콩나물을 넣어 살짝 데친다.

여기에 계절에 따른 나물과 육회, 다시마 튀각과 청포묵을 얹은 뒤 달걀 노른자와 참기름을 윤활제로 삼아 고추장에 비빈다.

이에 버금가는 것이 진주비빔밥이다. 진주비빔밥은 콩나물보다 숙주나물을 많이 쓰고 선지국과 함께 먹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밖에 산채비빔밥.콩나물비빔밥.열무비빔밥 등이 전국적으로 사랑 받고 있다.

비빔밥은 서민층 뿐 아니라 궁중.사대부 집안에서도 애용했다.

숙주나물.애호박.당근.표고버섯.도라지.고사리 등의 나물과, 쇠고기를 3가지 형태(양념하여 볶고, 육회를 만들고, 완자를 만듦) 로 지단과 함께 장식하여 멋을 더하였다.

쇠고기 소를 넣어 달걀물로 작은 반달 모양의 황.백색의 앙증스러운 알쌈을 만들어 얹기도 하였다.

비빔밥은 이제 국제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일본인들도 무척 좋아해 비빔밥 전문점이 일본에서 성행하고 있다.

홍콩인들이 그 지역 음식점에서 비빔밥을 먹고 격찬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1998년 대한항공이 기내식으로 세계 최고상을 받는 음식으로 꼽히기도 했다.

비빔밥이 세계적인 음식, 관광음식으로 승부하려면 재료와 조리법, 맛을 표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주비빔밥´ 이지만 재료에서 맛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전주비빔밥´ 의 상표에 걸맞은 특징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봄나물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비빔밥을 주말식탁에 올려 보자. 우선 밥은 고슬고슬하게 지어야 한다.

사골.쇠머리.소뼈 국물로 지으면 더욱 깊은 맛이 난다. 나물은 흰색으로는 도라지.숙주나물.콩나물을, 푸른색으로는 애호박.오이.시금치.취나물, 붉은색으로는 당근, 갈색으로는 고사리.고비 등을 사용한다.

요즘 많이 나는 봄나물을 이용하여 감칠맛 나게 무쳐 이용해도 좋다.

여기에 쇠고기와 표고버섯을 채썰어 볶고, 달걀을 얹고 다시마 튀각을 부수어 넣으면 달콤하고 부서지는 촉감도 좋다. 마무리는 물론 참기름과 고추장이다.

밥.고기 등의 산성 식품과 나물류 등 알칼리성 식품이 조화돼 균형있는 영양식인 비빔밥. 시금치나 채소를 싫어하는 편식하는 아이에게 식품을 골고루 먹일 수 있는 좋은 조리법이다.

매콤한 비빔밥엔 무맑은장국.콩나물국 등 맑은 국이 제격. 김치 이외의 다른 반찬은 사양해도 된다.

손정우 <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