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통해 교사노조탈퇴 권유한 어린이집 원장…法 "부당노동행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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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 자료사진. 뉴스1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 자료사진. 뉴스1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A씨는 어느 날 학부모 대표로부터 “노동조합에서 탈퇴해달라”는 취지의 말을 듣는다. 학부모와 대화를 이어가던 A씨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자신이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이 학부모 대표에게 “A선생님이 노동조합에서 탈퇴할 것을 권유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이집 원장(사용자)이 다른 사람을 통해 소속 보육 교사(근로자)에게 노동조합 탈퇴를 권고ㆍ요구하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까. A씨가 속한 노조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보고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어린이집 원장이 불복했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신청을 했다. 중노위가 이를 기각하자 원장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12부(재판장 홍순욱)는 26일 “원장이 제3자를 통해 보육 교사에게 노조 탈퇴를 권고했더라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원장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제3자 통한 노조 탈퇴 권유도 부당노동행위 

법원은 “원장은 직접 보육 교사에게 노조 탈퇴를 권유할 수 없어서 학부모 대표를 통해 탈퇴를 종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학부모 대표는 교사의 노조 탈퇴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입장은 아니었고, 원장의 부탁이 없었다면 A씨에게 노조 탈퇴에 관한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원장이 학부모를 통해 A씨에게 노조 탈퇴 권유를 한 것은 노조 조직에 대해 간섭ㆍ방해하는 행위로 인정할 수 있고,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원장은 “학부모 대표가 'A교사가 먼저 스스로 탈퇴를 언급했다'고 해서 학부모에게 '한 번 더 언급해달라'는 소극적인 부탁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원장과 A씨 사이의 면담 내용도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학부모로부터 '노조 탈퇴 권유 부탁' 사실을 들은 A씨는 다음날 원장과 면담을 했다. A씨는 그 자리에서 원장이 "노조 활동과 보육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생님이 탈퇴해야 다른 선생님들이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원장은 "A씨가 먼저 요청해 시작된 대화이고, 마치 개인적인 생각을 물어보는 것처럼 대화를 시작해서 이에 응해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일 뿐, 노조에 개입하려는 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비록 원장과 A씨가 둘만 있는 자리에서 A씨가 '솔직하게 말해달라'며 대화가 시작됐지만, 대화의 장소가 원장실이고 시점도 A씨가 학부모로부터 원장의 '노조 탈퇴 권유 이야기'를 들은 직후"라고 설명했다. 이런 사정에 비춰볼 때 원장의 발언은 사용자의 지위에서 근로자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노조 조직에 개입하는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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