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도 있었는데…" 뺑소니 당한 60대, 고물 수레 놓지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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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전 9시 5분쯤 철원군 갈말읍에서 혼자 고물을 수집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던 60대 노인이 뺑소니 사고를 당한 지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고 강원 철원경찰서가 23일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9시 5분쯤 철원군 갈말읍에서 혼자 고물을 수집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던 60대 노인이 뺑소니 사고를 당한 지 사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고 강원 철원경찰서가 23일 밝혔다. 연합뉴스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고물을 줍던 60대 지적장애인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20대 남성이 구속됐다. 이 남성은 사고 직후 도주했고, 뺑소니 사고를 당한 지적장애인은 사흘 만에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운전자 “고라니 친 줄 알았다” 진술 #경찰이 사고 현장 CCTV 보여주자 #“너무 무서워 달아났다”고 자백

23일 강원 철원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9시 5분쯤 철원군 갈말읍에서 혼자 사는 A씨(61)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신고는 이웃 주민이 했다. 이 주민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고물을 줍던 A씨가 며칠째 보이지 않자 집을 찾아갔고 숨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A씨의 부검을 의뢰했고 목과 척추뼈가 부러진 점으로 볼 때 외력에 의한 다발성 골절이 의심된다는 법의관의 소견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경찰은 A씨의 집 인근 폐쇄회로(CC)TV에서 A씨가 다리를 절며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을 찾아냈다. A씨의 동선을 따라 CCTV 분석에 나선 경찰은 집에서 600m가량 떨어진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지난 5일 오전 5시 20분쯤 승용차 한 대가 A씨를 치고 달아나는 영상을 확보했다. 해당 CCTV 영상에는 승용차 운전자가 길가에서 수레를 끌고 가던 A씨를 충격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이어 사고 직후 차를 세운 운전자가 차에서 내린 뒤 쓰러져 있는 A씨의 주변을 돌며 상태를 살펴보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한참을 살펴본 운전자는 쓰러진 A씨를 구조하지 않고 다시 차에 오른 뒤 그대로 달아났다. 사고 현장에서 1시간가량 쓰러졌던 A씨는 오전 6시 20분쯤 어렵게 몸을 일으킨 뒤 손수레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갔다.

운전자 인근 지역 거주하는 20대

뺑소니 사고 일러스트. [연합뉴스]

뺑소니 사고 일러스트. [연합뉴스]

경찰은 CCTV를 통해 달아난 승용차의 번호판을 추적한 끝에 사고를 낸 B씨(26)를 검거했다. 또 철원군 한 주차장에서 오른쪽 전조등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던 사고 차량도 발견했다. B씨는 처음에는 ‘고라니를 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범행을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이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자 “무서워서 달아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억울한 죽음으로 묻힐뻔한 이번 사건은 사고 사흘 만에 뺑소니 사고로 밝혀졌다. 뺑소니 운전자 B씨는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 혐의로 B씨를 구속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A씨는 평소에도 새벽마다 손수레를 끌고 고철 등을 줍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16.5㎡(5평) 남짓한 단칸방에 혼자 살아온 A씨에겐 고물 수거가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이후 다친 상태에서도 생계를 위해 손수레를 끌고 가는 A씨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며 “B씨가 사고 직후 즉시 112 또는 119에 신고하는 등 구호 조치를 했다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철원=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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