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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묵인, 美방관' 합작···쉴틈 없던 北바지선, 모래까지 팔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이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보고서 발간 #지난해 석탄·모래 불법 수출로 5억~6억달러 수입 #한국선박서 정유제품 사들인 중국 선박, 북 운송도 #사이버 달러벌이, 새로운 제재 회피 수단 부각

지난해 북한의 정유 수입은 유엔이 정한 연간 50만 배럴 한도를 훨씬 초과했고, 대형 바지선이 동원돼 수출 금지된 북한산 석탄을 중국까지 실어나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18일(현지시간) 외신에 공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 연례보고서에는 이 밖에도 북한의 다양한 제재 위반 사례들이 담겼다.

북한의 불법 수출입 활동은 대부분 중국을 오가며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중국이 북한의 제재 위반을 묵인하는 한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 시스템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 환적에 가담한 선박에 대한 미국 차원의 제재 움직임도 최근 들어 뜸해진 상황이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상황을 알고도 북한이나 중국에 추가 제재를 부여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제재 부과에 소극적인 것이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항구까지 북한산 석탄을 실어나르는 북한의 대형 바지선. [대북제재위 보고서]

중국 항구까지 북한산 석탄을 실어나르는 북한의 대형 바지선. [대북제재위 보고서]

①대담해진 수법=북한의 지난해 정유제품 수입은 연간 한도인 50만 배럴보다 최소 3배~최대 8배(지난해 1~10월, 143만~389만 배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남포항까지 외국 선박의 직접 운송 사례가 늘어난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0월 외국 유조선은 64차례 남포항 등으로 정유 제품을 운송했고, 특히 6~10월에는 외국 선박의 운송 빈도가 높았다. 제재위는 “북한 소형 선박이 ‘선박 대 선박’ 방식으로 옮겨싣기를 하는 것보다, 외국 선박의 직접 운송을 통해 수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북한 선박이 석탄 환적을 위해 중국 항구 일대를 드나드는 장면도 위성에 포착됐다. 석탄과 모래 수출을 위해 대형 바지선까지 동원했다. 제재위에 따르면 지난해 5~9월에 37척의 서로 다른 바지선이 북한산 석탄을 중국으로 실어날랐다. 북한의 석탄 수출은 지난해 1~8월 최소 370만t에 3억7000만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지난해 5월 이후 황해도 해주와 함경남도 신창에서 채취된 모래는 약 90여 척의 바지선을 통해 최소 100만t, 총 2200만 달러어치가 중국으로 수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모래와 석탄, 조업권 판매 등을 통해 지난해 5억~6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선박에 조업권을 판매한 규모는 따로 나오지 않았지만 2018년 기준 1억 2000만 달러 규모의 조업권 거래가 이뤄졌다.

외국 국적 선박이 북한 남포항에 직접 정유제품을 운송하는 모습. [대북제재위 보고서]

외국 국적 선박이 북한 남포항에 직접 정유제품을 운송하는 모습. [대북제재위 보고서]

②한국 선박 연루도=북한 선박이 직접 환적에 나서기보다 제3국 선박 간 해상 환적을 통해 정유를 공급받는 경우도 여전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선박이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선박에 정유 제품을 공급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중국 국적 ‘윤홍(Yun Hong) 8호’는 지난해 7~8월 동중국해 상에서 한 한국 선박으로부터 4차례에 걸쳐 정유 제품을 환적 받은 뒤 이 가운데 3차례는 남포항에 기항 통지했다. 제재위는 북한 선박과 직접 환적하지 않은 것이어서 제재 결의를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제3국 선박 간 해상 환적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주로 동중국해에서 불법 환적이 발생하는 만큼 해당 해역에서 활동하는 선박들에 정부가 대북 제재 준수 의무를 강하게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③핵ㆍ미사일 개발도 지속=북한은 2017년 말 이후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단하고 있다. 그러나 핵 관련 시설 건설과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미사일 시험 발사 등을 지속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고 제재위는 평가했다.

핵 활동과 관련해선 북한 영변의 경수로 주변에서 건물 신축 작업 등이 위성사진을 통해 포착됐다. 영변의 5MW 원자로는 2018년 말 이후 가동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재위는 한 유엔 회원국을 인용해 평산의 우라늄 공장이 가동 중이라고도 전했다.

북한은 지난해 5~11월 사이에는 13차례에 걸쳐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과 잠수함 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포함해 최소 25발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제재위는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인 차세대 SLBM뿐 아니라, 탄도미사일과 유도기술을 결합한 여러 종류의 새로운 고체연료 단거리 미사일들을 생산, 발사하는 ‘자주적인’(autonomous)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의 2019년 '평양 블록체인ㆍ암호화폐 회의' 웹사이트. [대북제재위 보고서]

북한의 2019년 '평양 블록체인ㆍ암호화폐 회의' 웹사이트. [대북제재위 보고서]

④구멍 커지는 사이버 공격=북한의 사이버 해킹이나 가상화폐 기술은 새로운 제재 회피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추적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저위험 고수익 분야로 판단하고 북한이 지속적으로 가상화폐를 채굴하면서 금융시장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지속한다는 게 제재위 판단이다.

북한의 해킹조직인 ‘라자루스’ 그룹은 동유럽 사이버 범죄그룹인 트릭봇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재위는 특히 북한의 정찰총국을 주목했다. 앞서 2016년과 2017년 대북제재위를 겨냥한 ‘스피어피싱’ 공격도 정찰총국의 ‘김수키’ 그룹이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재위는 지난해 9월 중간보고를 통해 정찰총국 산하 121국 해커부대가 2015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적어도 35차례 사이버 해킹을 시도해, 최대 2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추정했다. 이번 보고서에 북한이 사이버 해킹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제시되지 않았다.

위문희 기자 moobn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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