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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100만에도 공약 홀대…이자스민 "韓 미래 걸린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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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들의 공약집 어디에도 이주민 관련 내용이 없어 속상해요.”

11일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투표소에 간다는 몽골 출신 진소연(42)씨의 말이다. 진씨는 2005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충북 괴산에 정착했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한국인이 될 수 있었던 건 지난해 12월이다. 진씨는 “이주민들의 일자리와 관련한 공약이 없는 게 특히 아쉽다”며 “이자스민 후보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2018년 행정안전부는 우리나라 다문화가구원이 1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법무부는 누적 귀화자가 2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 출마한 이주민 후보는 이자스민 정의당 후보(9번) 1명이다.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대선 앞두고 부산진구선거관리위원회와 부산진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개최한 투표 체험 행사에 참여한 이주여성들. 송봉근 기자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대선 앞두고 부산진구선거관리위원회와 부산진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개최한 투표 체험 행사에 참여한 이주여성들. 송봉근 기자

통계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08년 이후 다문화 결혼 건수는 2008년 3만6629건 이후 하락세지만 2018년에도 2만3773건으로 전체 혼인 건수의 9.2%를 기록했다. 같은 해 전국 출생아의 5.5%(1만8079명)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다. 곽재석 한국이주동포정책개발연구원장은 “‘다문화가구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국제결혼을 한 부부와 그 자녀만을 포함하는 협소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국제결혼 부부의 한국인 부모나 한국에 정착한 뒤 외국인끼리 결혼해 탄생한 가족 등 실질적인 다문화 가구원 수가 빠져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11월6일 통계청이 공개한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 연합뉴스

지난해 11월6일 통계청이 공개한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인구구성은 빠른 속도로 ‘다문화 사회’로 변하고 있지만 21대 총선에서도 이주민ㆍ다문화 의제는 홀대받고 있다. 양과 질에서 유권자들의 판단을 물을 만한 정책 공약을 제시한 원내 정당은 정의당 정도다. 정의당은 이주민 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다룰 전담기구(가칭 ‘이민청’)를 만들고 이주민들의 체류 자격과 권리 보호 문제 등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이민법을 제정하겠다는 정책을 관련 공약 1순위로 내세웠다. ▶생애주기별 결혼이민자 지원대책 마련▶국내 거주 모든 이주민으로 다문화가족 개념 확대▶노동비자 영주제도 도입 등도 정의당이 제시한 공약이다.

민주당은 이주민ㆍ다문화 공약을 여성관련 분야의 하위 영역으로 간단히 다루고 있다. ▶결혼이주여성 가정폭력 긴급대응 체계화▶폭력피해 이주여성 상담소 확대 등이 주된 내용이다. 민주당은 ‘16호 영입인재’로 원옥금(44) 주한 베트남 교민회장을 들였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고,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엔 이주민 후보가 없다.

새누리당 시절인 20대 총선에서 ▶다문화 가족 성장지원 프로그램 ▶다문화 유치원 확대 등 정책을 내세우며 비례대표 당선자(이자스민)를 냈던 미래통합당은 이번엔 후보도 공약도 없다. 호남 기반의 민생당에서도 관련 공약과 후보를 찾아볼 수 없다. 전남은 2018년을 기준으로 다문화 혼인 비중이 10.6%로 충남(10.7%)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지역이다. 시ㆍ군ㆍ구 중에선 전남 완도(19.9%)가 다문화 혼인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이주민ㆍ다문화 의제가 홀대받는 건 후보자나 정당이 다문화 가구원 중 유권자로 인정받는 사람의 수가 적다는 점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거주기간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외국인도 투표권을 가질 수 있는 지방선거와 달리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하려면 국적이 필요하다. 외국인 주민이 많은 한 수도권 지역구에 출마한 한 여권 후보는 “외국인 주민 중 유권자는 극소수여서 당락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귀화자 중 18세 이상인 사람과 다문화 가정에서 출생한 사람들 중 2002년 4월16일 이전 출생자가 ‘다문화 유권자’에 해당하는 셈이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통계가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8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함께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이의용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선 이자스민 후보. 연합뉴스

지난 8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함께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이의용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선 이자스민 후보. 연합뉴스

유일한 이주민 출마자인 이자스민 정의당 후보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주민ㆍ다문화 의제는 이념이나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개시 후 3일 충남 서산, 6일 대구, 7일 경주, 8일 부산 등 전국을 돌며 이주민 여성들과 관련 단체를 만나고 지역구 후보들의 유세 차량에도 오르고 있다. 이 후보는 “‘한국어 교육’만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게 기존 거대 정당들의 인식”이라며 “21대 국회에선 결혼이주민에 대한 생애주기별 지원방안을 꼭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장혁ㆍ김정연ㆍ박건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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