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미스터리 풀리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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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사회적 행동과 인식기능이 혼란을 일으키는 뇌신경 질환인 자폐증(自閉症)의 미스터리가 과학자들의 꾸준한 연구로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

미국의 뉴욕 타임즈지는 28일 자폐증에 관한 특집기사에서 과학자들은 사망한 자폐증 환자의 뇌회로 해부, 자폐증 환자의 행동실험, 원숭이 뇌를 이용한 연구 등을 통해 자폐증이 발생하는 원인과 시기 그리고 자폐증 환자에게는 불가능한 감정이입(感情移入),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인식하는 해당 뇌회로를 규명해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특집기사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본다.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학의 신경학자 데이비드 애머럴 박사에 따르면 자폐증은 운동, 관심, 학습, 기억, 언어, 기분, 사회적 상호작용 등 인간행동의 여러 측면에서 장애가 발생하는 뇌신경 질환이다.

자폐증은 유아때는 몸을 뒤집고 앉고 기고 걷는 행동이 조화되지않은 이상한 모양으로 나타나며 생후 18개월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주지않고 다른 사람이 표시하는 것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표정을 따라하지 않는다. 2-3세가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다. 대개의 경우 말을 하지않고 팔을 때린다든가 스스로의 신체를 자극하는 행동을 반복한다. 또 모든 변화를 싫어한다.

자폐증은 경증에서 중증까지 정도의 차이가 있어 진단하기가 쉽지않다. 자폐증 발생률은 중증의 경우 1천명에 한명꼴이지만 아스프버거 증후군을 포함한 가벼운 자폐증까지 포함하면 발생률은 500명에 한명꼴이다.

50년전만 해도 자폐증은 마음이 "차거운" 어머니와 나약한 아버지사이에서 태어 난다고 과학자들은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전적 원인에 촛점이 모아지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하나가 자폐증이면 나머지도 자폐증이 될 가능성이 90%로 나타나고 있다.

시카고대학 의과대학 아동-청소년 정신과장 베네트 리벤설 박사에 따르면 자폐증과 관련된 유전자는 최소한 5-6개이다. 이 유전자들은 제7, 13, 15번 염색체에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유전자들이 어떤 기능을 하느냐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로체스터대학 의과대학 태생학자 패트리셔 로디어 박사는 자폐증을 일으키는 뇌신경의 고장은 여성이 임신사실을 알기도 전인 임신20-24일사이에 나타난다고 믿고있다. 기본적인 신체와 뇌구조를 형성하는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키면 자폐증으로 나타난다는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버드대학 의과대학의 신경학자 마거리트 보우먼 박사는 뇌회로가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한 결과 자폐증과 관련된 일부 뇌세포의 결함은 임신 4-5개월사이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의 신경학자 에릭 코치슨 박사는 뇌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새로운 세포를 만든다는 놀라운 사실이 최근 밝혀진 만큼 자폐증은 출생후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린이의 뇌는 유전자와 환경요인의 상호작용으로 형성과정을 계속하는데 이 과정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자폐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1983년이후 사망한 자폐증 어린이와 성인 11명의 뇌조직을 해부해 분석한 보우먼 박사는 사회적 행동을 관장하는 주요한 뇌부위 3곳이 비정상임을 알아냈다.

결정을 내리고 기획하는 뇌부위인 전두엽(前頭葉)중 일부가 정상뇌보다 두껍고 감정이 창출되는 대뇌의 변연계(邊緣系) 세포들이 정상뇌보다 크기가 30% 작고 숫자가 과도하게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세포들은 또 미성숙 상태였다. 이밖에 다음에 나타날 행동, 사고, 감정을 예고하는 소뇌(小腦) 세포의 수가 정상보다 30-50%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애머럴 박사는 원숭이 뇌를 연구한 결과 손과 얼굴의 움직임에만 반응을 나타내고 다른 모든 신체의 움직임에는 반응하지않는 특수 뇌세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에게도 이러한 특수 뇌세포가 있으며 자폐증 환자는 이 뇌세포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않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그는 말한다.

자폐증 아이들의 행동을 실험한 런던대학 신경학자 크리스 프리스 박사에 따르면 자폐증 아이들은 남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방해는 할 수 있지만 속임수는 쓰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자폐증 아이들은 "이리 와"처럼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자기의 뜻을 전달하는 제스처는 쓰지만 "잘 했어"처럼 다른 사람의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표현적 제스처는 쓸줄 모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밖에 자폐증 아이들은 어떤 일을 훌륭히 해 냈을 때 느끼는 기본적인 기쁨인 자랑스러운 마음을 갖지 못한다고 프리스 박사는 말한다.

자폐증의 유전적, 신경화학적 메커니즘이 규명되려면 앞으로 여러해가 더 걸릴 것으로 대부분의 신경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자폐증은 1대1 치료법이 효과적이며 성공률도 30-50%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뇌회로를 고치기 위해서는 일찍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2-3세때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폐증 아이들은 5-6세가 되어서야 이 병이 진단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엄남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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