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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위기→지지율 64%···메르켈 반전 비밀은 코로나 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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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유럽 각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코로나 사태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65) 지지율이 최근 64%까지 치솟았다.

8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코로나바이러스 대책을 둘러싸고 독일 메르켈 총리의 존재감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당초 메르켈 총리는 지지율이 저하되면서 조만간 정계를 은퇴할 뜻을 밝혀왔지만,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에게 진지하게 호소하는 모습이 호평을 받으면서다. 마이니치는 "위기 시에 의지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의 기대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19 대응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지지율이 지난 2일 기준 64%까지 치솟았다. [AFP=연합뉴스]

코로나 19 대응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지지율이 지난 2일 기준 64%까지 치솟았다. [AFP=연합뉴스]

독일 공공 방송 ARD가 지난 2일에 공표한 여론 조사 결과에서 메르켈 총리의 지지도는 전월 대비 11%포인트 오른 64%로 급등했다. 집권 기민당(독일 기독교 민주당)의 지지율도 같은 기간 7%포인트 상승한 34%를 기록했다.

코로나에 대한 정부 대응에 독일 국민은 대체로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영방송 ARD가 실시한 2일 여론조사에서 코로나 19에 대한 독일 정부의 대응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9%)와 '만족한다'(54%)는 응답이 63%에 달했다. 지난달 조사와 비교해 28%포인트나 올라간 수치다.

유럽 이웃 국가들과 비교해 코로나 19 대응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을 높인 주된 요인이다. 이탈리아 등은 치사율이 10%대인데 독일은 2% 미만으로 억제되고 있다.

9일 중국 텐센트 의료정보 사이트 DXY에 따르면 독일의 코로나바이러스 치사율은 1.8%(한국은 1.92%)다. 이는 이탈리아(12.67%), 프랑스(12.58%), 영국(11.68%), 스페인(9.92%)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이탈리아·스페인·프랑스 등에서 사망자가 1만명 이상인 반면, 독일의 누적 사망자 수는 1861명이다.

뉴욕타임스는 독일의 치사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에 대해 "초기 건강한 젊은이들이 주로 감염됐기 때문에 금방 회복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보도했다. 이어 "무료로 이뤄지는 공공의료 시스템이 탄탄하다"면서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가이드라인도 잘 준수됐고 조기 검사와 치료가 강력하게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독일은 무증상자도 검사를 진행했다.

원래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그다지 높지 못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시리아 등 중동으로부터 유럽으로 유입된 대량의 난민·이민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독일 내 난민에 의한 집단 폭행 사건이 발생해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연패 후에는 당수 자리에서 물러났다. 총리직도 내년 임기만료로 물러나게 되므로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그랬던 것이 올해 코로나 19로 반전의 계기를 맞았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위기 관리자인 메르켈 총리의 '무티(Mutti) 리더십(독일어로 엄마)'이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유럽의회에서도 "모든 문제의 어머니, 위기 해결사 메르켈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썼다.

유럽의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모든 문제의 어머니 : 위기 관리자 메르켈 총리의 귀환' [유럽의회 홈페이지]

유럽의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모든 문제의 어머니 : 위기 관리자 메르켈 총리의 귀환' [유럽의회 홈페이지]

특히, 그를 돋보이게 한 건 지난달 대국민 연설이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TV를 통해 이뤄진 대국민 연설에서 "동서독 통일 이래, 아니 제2차 세계 대전 이래의 시련이다. 국민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감염이 확대되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다음 '타자와의 접촉'을 줄이는 것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는 상황을 매우 정밀히 분석한 뒤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면서 "메르켈 총리가 자신의 롤모델로 (과학자인) 마리 퀴리 부인을 꼽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지난 3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TV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하는 것을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TV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하는 것을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또 일부 국경 폐쇄라는 강경 조치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임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녹여서 전달했다.

그는 "여행·이동의 자유를 어렵게 쟁취한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제한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는 구서독 태생이지만, 목사였던 아버지의 전근으로 생후 얼마 되지 않아 구동독으로 이주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서쪽으로의 이동이 제한된 구동독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을 연설에 녹여 국민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보도했다. FT는 "심지어 정치적으로 적수인 당에서도 그의 대응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면서 "녹색당의 콘스탄틴 폰 노츠 의원이 '우리에게 앙겔라 메르켈 같은 총리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트윗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희망 섞인 관측 대신 강력한 메시지를 제시한 것도 초기 코로나 대응에 보탬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11일에는 "독일 인구의 70%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고 말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메르켈 총리 자신이 코로나 19 양성판정을 받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신과 접촉한 의사가 코로나 19 양성 판정을 받은 사실을 통보받은 뒤 지난달 22일부터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그 뒤 세 차례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으면서 12일 만인 지난 3일 집무실로 복귀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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