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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 2만9000명, 사망은 118명뿐…독일이 쥔 '코로나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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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독일은 감염자가 많이 나왔음에도 치명률(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 유난히 낮아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통계 사이트인 월드오메터에 따르면 독일은 23일 자정 기준 세계에서 다섯째로 많은 2만9056명의 확진자가 나왔지만, 사망자는 118명으로 치명률(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이 0.41%다. 37만2529명의 확진자와 1만6313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치명률 4.38%인 전 세계 수준의 10분의 1 이하다. 같은 유럽국가인 이탈리아의 9.51%(확진자 6만3927명에 6077명 사망), 스페인의 6.67%(3만3089명 중 2207명), 프랑스의 4.33%(1만9856명 중 860명)보다 현저히 낮다. 8961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111명이 숨져 1.24%를 기록한 한국과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이다.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세계 평균 10분의1 이하 낮은 치명률 #노인 인구 많고, 건강습관도 나쁘지만 #의료비·인력·병상 유럽 최고 수준 확보 #코로나19의 습격에 대응할 준비 갖춰 #건강 보험으로 보편적 의료복지 유지 #사적 보험도 도입 개인 선택권 존중 #의료투자 여력 생겨 병상·시설 유지 #인센티브 제도로 의료 인력도 확보 #자랑 대신 “이제 시작” 엄중 경계 #메르켈 총리는 늘 최악 상황을 상정

독일 서부 에센대학 의료원의 감염 및 바이러스 질환 구역의 수간호사인 카난 엠잔이 지난 5일 미디어 행사에서 보호장구 착용 시범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서부 에센대학 의료원의 감염 및 바이러스 질환 구역의 수간호사인 카난 엠잔이 지난 5일 미디어 행사에서 보호장구 착용 시범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고령 인구 비율도 이탈리아와 막상막하

독일은 도대체 왜 코로나19 치명률이 이렇게 낮은 것일까. 그 원인을 파악하면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확진자의 생명을 지키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이탈리아에서 코로바19 확진자가 다량 발생하고 치명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고령 인구 비율이 유난히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독일은 고령자 비율에서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독일의 65세 이상 노령 인구 비율은 2015년 21.2%로 이탈리아(21.7%)와 함께 유럽 내 최고 수준이다. 고령자 비율에선 독일이나 이탈리아나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생활 습관에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블룸버그 통신 자료를 인용하며 생활습관은 독일보다 이탈리아가 더 건강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EU 보건통계를 보면 과도한 음주나 흡연, 비만을 비롯한 건강을 해치는 요인은 독일이 더 심하다.

독일 중서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근교의 그로스게라우의 병원 입구에서 의사인 록사나 자우어가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면봉으로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중서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근교의 그로스게라우의 병원 입구에서 의사인 록사나 자우어가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면봉으로 검체를 채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의료비 지출과 의사·간호사 유럽 최고  

비밀의 열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2017년 발간한 독일 보건 개요(Germany Country Health Profile 2017)에서 찾을 수 있었다. 독일은 보건의료 통계에서 의료비, 인력, 시설의 세 박자가 유럽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독일은 의료비 지출액과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 의사와 간호사 인력과 병상 확보율은 EU에서 최상위권이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독일의 의료에 대한 지출이다. 독일의 1인당 보건의료 지출은 2015년 통계로 3396유로로 EU에서 둘째로 높으며 EU 평균 2797유로보다 43%가 많다. 독일의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료비 비율은 11.2%로 EU 평균 9.9%보다 1.3%포인트 높은 것은 물론 EU 회원국 중 최고다. 게다가 독일 의료비의 84.5%는 공공 재정에서 나오며, 개인 부담은 12.5%로 EU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이는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힘으로 작용했다. OECD 보고서는 독일의 의료 접근성을 ‘양호(Good)’로 평가했다.
이탈리아와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2015년 이탈리아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2502유로로 EU 평균인 2797유로보다 10%쯤, 독일보다 약 26%가 적다. 이탈리아의 GDP 대비 의료비는 9.1%로 EU 평균 9.9%보다 0.8%포인트, 독일보다 2.1%포인트가 각각 낮다.

독일 중부 에어푸르트의 적삽자사에서 자원자들이 헌혈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헌혈자가 줄어 당국이 헌혈을 호소하고 있다. AP=s뉴시스

독일 중부 에어푸르트의 적삽자사에서 자원자들이 헌혈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헌혈자가 줄어 당국이 헌혈을 호소하고 있다. AP=s뉴시스

병상 10만 당 813개 EU 최다…전염병 대응  

독일의 의료 인프라도 EU의 다른 회원국을 압도한다. EU 통계청(Eurostat)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독일 병원의 병상 비율은 2015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813개로 회원국 중 최다이며 평균보다 58%가 많다. 인구 1000명당 의사 비율은 EU 평균인 3.60명보다 0.65명이 더 많은 4.25명에 이른다. 이탈리아의 경우 3.99명으로 독일보다 적다. 독일은 인구 1000명당 간호사 비율도 EU 평균인 8.4명을 상회한다.
독일은 덴마크·스웨덴과 더불어 EU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평균보다 많은 세 나라 중 하나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의료 인력이 풍부한 나라의 하나라는 이야기다. 병원 근무 의사 숫자는 2004년 진단 결과에 따라 수가를 달리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그해 12만5000명에서 2015년 16만3000명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독일은 의료비, 병상, 인력에서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에 대응할 여력을 충분히 갖추게 된 셈이다.

독일 동부 지역 마그데부르크의 대학병원 입구에서 지난 20일 보호복을 착용한 직원들이 통과 차량을 조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독일 동부 지역 마그데부르크의 대학병원 입구에서 지난 20일 보호복을 착용한 직원들이 통과 차량을 조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강제보험과 사적보험 공존해 선택 존중

눈에 띄는 점은 독일이 보편적 의료복지를 제공하면서도, 더 내고 더 많은 서비스를 받는 사적 보험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건강보험은 법정 강제보험(SHI)과 사적보험(PHI)이 공존한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은 급여나 수입에 비례해서 보험료를 내고 모든 가입자가 또 같은 서비스와 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건강보험 하나만 의무적으로 가입할 수 있다. 독일은 이와 달리 기본 의료를 추가 비용 없이 제공하는 법정 강제보험과 더 많은 보험료를 받고 더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적보험이 일종의 경쟁 관계에 있다.
2009년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소비자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일정 수준(2015년 기준 연 5만4900유로) 이하의 급여를 받는 봉급 생활자는 의무적으로 법정 강제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 이상의 급여를 받는 고액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 그리고 공무원은 법정 강제보험과 사적보험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사적보험을 선택한 사람은 법정 강제보험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대신 더 나은 서비스를 보장받는다. 2015년 독일 국민의 88%가 법정 강제보험을, 10%가 사적보험을  이용한다. 나머지는 군인·경찰 등을 위한 특수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독일에선 PHI의 도입이 의료 평등에 위배된다는 논란과 경쟁체제로 의료 서비스가 향상되고 소비자의 숨통을 텄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보험료를 더 내고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 사적보험을 도입하고 의료진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독일은 풍부한 의료자원을 보유하게 됐으며 병상이나 병원 시설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요인이 모여서 현재 독일이 코로나19에 가장 낮은 치명률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20일 독일 베를린 근교 포츠담에 있는 한 수퍼마켓의 화장지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 독일에선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화장지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일 독일 베를린 근교 포츠담에 있는 한 수퍼마켓의 화장지 진열대가 텅 비어있다. 독일에선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화장지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문가, “치명률 장기적으론 비슷해질 것”  

그런데도 독일은 자국의 의료 시스템을 해외에 자랑하지도,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를 잘 버텨서 모범이 되고 있다고 으스대지도 않는다. 중국이 민주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가공할 통제로 코로나19 확산 세를 떨어뜨렸다고 자랑하며 다른 나라에 이런 모델을 권하는 모습과 비교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의 유난히 낮은 치명률에 대해 독일 정부는 “이제 시작이라 장기적으로는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방역을 주도하는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 로타르 빌러 소장은 “독일의 치명률은 장기적으론 다른 나라와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초기 몇 달간의 통계로 대처를 잘했다, 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독일 함부르크대 의료원의 마릴린 아도 감염과장은 “독일이 코로나19에 의학적으로 잘 대비됐다가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아도 과장은 “북부 이탈리아는 병원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환자가 넘쳐 사망자가 증가하는 것”이라며 “독일은 아직 병상·장비·인력이 부족하지 않아 치명률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베를린의 한 의원 밖에서 보호복을 착용한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환자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인을 위한 검체 채취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 베를린의 한 의원 밖에서 보호복을 착용한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환자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인을 위한 검체 채취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높은 검사율에 사망 원인 통계방식 차이도 원인

가디언은 독일의 높은 검사율과 기저 질환자는 코로나19가 아닌 기저질환을 사망 원인으로 보는 사망자 데이터 수집 방식의 차이도 낮은 치명률을 기록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능력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못지않다는 평가다. 독일 보험의사협회는 하루 1만2000명,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의 빌러 소장은 한주에 16만 명 검사 능력이 있다고 소개했다. 가디언은 독일의 권위 있는 주간신문인 디 차이트를 인용해 “이탈리아는 무증상의 젊은이는 검사하지 못하고 코로나19 증상을 나타내는 노인을 중심으로 검사한 게 높은 치명률로 나타났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독일은 원하는 사람을 포함해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검사했기 때문에 전체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이 낮을 뿐이라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준다. 검사자 선택의 문제는 비율이 낮은 것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체 사망자가 그렇게 적은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한 마디로 독일은 아직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초기 성과에 흥분하지 않고 엄중한 경계 태세를 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22일 2인 초과 모임 금지 등 강력한 코로나19 방역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메르켈은 이날 자신이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격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검사 결과 메르켈은 음성으로 나타났다. AP=뉴시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22일 2인 초과 모임 금지 등 강력한 코로나19 방역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메르켈은 이날 자신이 확진자와 접촉해 자가격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검사 결과 메르켈은 음성으로 나타났다. AP=뉴시스

경계 풀지 않고 헛된 희망 주지 않는 메르켈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맞는 독일의 엄중함과 진중함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태도와 행동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메르켈 총리는 코로나19와 관련한 여러 차례의 회견·연설에서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행동해왔다. 3월 11일 기지회견에서 과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며 인구의 70%가 감염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메르켈 총리는 코로나19가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상황을 냉정하게 지적하면서 그렇게 말했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당시 독일에는 1296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는 3명인 상황이었다는 게 AP통신의 보도다. 그런데도 국민에게 헛된 희망을 주거나 섣부르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지 않고 과학자들의 보고만 전했다.

지난 21일 독일 수도 베를린을 상징하는 장소이자 관광 명소인 브란덴부르크문 앞이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텅 비어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1일 독일 수도 베를린을 상징하는 장소이자 관광 명소인 브란덴부르크문 앞이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텅 비어있다. AP=연합뉴스

정치인 아닌 과학자·의사에게 방역 맡겨

메르켈은 독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의 과학자·의학자들에게 국경 부분통제, 국민 이동금지 등 방역 정책을 맡기고 본인은 국민을 설득하는 데 집중했다. 정치 지도자로서 아직 인류가 제대로 모르는 바이러스에 대해 과학적·의학적으로 조심하자고만 강조했다. 역병 대응을 정치적인 치적이나 정치적 기회로 이용하려는 기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오로지 국민과 함께 이겨나가자고 외치며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방역 원칙에 예외 없다” 솔선수범의 리더십  

올해 65세인 메르켈은 20일 60세 이상이 맞게 돼 있는 폐렴 구균 예방주사를 접종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이를 주사한 의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메르켈은 22일 독일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16개 연방 주와 가족 외 2명 초과 모임 금지 등 강력한 코로나19 대응 방안에 합의하고 이를 발표했다. 그 발표의 말미에 자신이 이렇게 확진자와 접촉했음을 공개하고 ‘원칙’에 따라 자가격리에 들어가며 그동안에도 재택근무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방 총리도 방역 원칙에서 예외가 없음을 보여주며 솔선수범한 셈이다. 메르켈은 이어진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독일 국제방송인 DW가 보도했다. 그 소식에 독일 국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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