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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전문의···'적폐'라던 과잉병상, 코로나 효자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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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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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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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허영구(60) 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다 숨졌다. 2월 26일 오전 10시 방문한 환자를 진료하면서 폐 사진을 찍었다. 29일 다른 환자에게 수액 주사를 놓았다. 두 환자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허 원장은 마스크를 쓰고 진료했지만 두 환자 중 누군가에게 감염됐다. 증세를 물어보는 문진만 하지 않았고, 추가적인 의료행위를 하다 감염됐다. 29번 코로나19 환자는 2월 확진 판정 전 열흘 동안 아홉번 의료기관을 방문했다. 하루에 내과·외과를 두 번 들른 적도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이비인후과 원장은 의심증세를 보인 환자에게 보건소 선별검사소로 가라고 안내했다.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코로나19 극복 과정의 역설 #외래진료 방문 횟수는 연 17회 #압도적 OECD 1위 기록 유지 #코로나 1차 방어선 톡톡히 해 #서울대 “병상 많을수록 완치 높아”

7일 0시 현재 한국의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1만331명이다. 대만·싱가포르처럼 우리보다 방역을 잘한 나라도 있고, 유럽이나 미국처럼 못한 나라도 있다. 유럽·미국에 비해 우리의 강점은 무엇일까. 코로나19 환자가 확진 전 한두 군데 동네 의원을 들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실핏줄처럼 퍼진 3만1000여개의 동네 의원이 이번에 1차 방어선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국인은 병원에 편하게 간다. 실력 있는 전문의 만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길 가다가 몸이 안 좋으면 눈에 띄는 동네 의원에서 바로 진료받는다. 한국인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연간 16.6회다(보건복지부 2019년 자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다. 평균치(7.1회)의 2.3배에 달한다. 한국은 병상수도 많다. 과잉 의료 이용, 과잉병상은 그동안 한국 의료의 적폐 중의 적폐로 통했다. 이런 적폐가 이번 코로나19에서 효자가 됐다.

OECD 주요국 병상수와 코로나19 완치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OECD 주요국 병상수와 코로나19 완치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OECD 헬스 데이터(2019년)를 보면 외래진료 횟수가 많은 한국·일본·독일의 코로나19 치명률이 낮다. 한국은 치명률이 1.9%, 일본은 2%, 독일은 1.7%이다. 반면 횟수가 적은 편에 속하는 이탈리아(12.5%)·프랑스(12%)·스페인(9.7%) 같은 나라는 높다. 다만 미국은 OECD에 보고한 가장 최근 자료가 2011년, 4회다. 미국의 치명률(3%)이 낮은 편이라 외래진료와 치명률 상관관계로 설명이 잘 안된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이나 미국은 의사, 특히 전문의사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 의료의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한국은 매우 좋다”고 말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살다 귀국한 한 공무원은 “중국 여행 이력이 없으면 진단 검사받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병원에 가려면 일반의(GP)에게 연락해서 예약해야 하고, 전문의 만나려면 GP를 거쳐야 한다. 영국의 경우 백내장 수술받는데 석 달 이상 기다리는 환자가 32%, 무릎관절 치환수술은 51%에 달한다. 한국은 며칠 내에 가능하다.

서울대 의대 코로나19 과학위원회는 7일 확진 환자 3000명 이상 발생 국가(23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수와 코로나19 완치율을 비교했다. 한국은 병상이 12.3개, 확진 환자 중 완치자 비율이 62.3%다. 병상도 매우 많고 완치율도 매우 높다. 다음은 독일인데 병상이 8개(2위), 완치율이 27%(3위)다. 병상 3위 오스트리아는 완치율 8위다. 반대로 병상이 가장 적은 칠레는 완치율 12위다. 북반구 중 병상이 가장 적은 데는 스웨덴인데, 완치율은 15위다. 병상이 적은 데는 상관관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지만 병상이 많은 나라는 분명히 완치율과 비례한다는 게 서울대의 분석이다.

외래진료와 코로나 환자 발생 비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외래진료와 코로나 환자 발생 비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은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서울의료원 등 69개다. 이들은 약 1만7000개의 병상에 입원해 있던 일반 환자를 다른 데로 돌리고 코로나19 환자만 받았다. 한국이 ‘과잉병상’이 아니라면 짧은 시간에 환자를 뺄 수 없었고, 확진 환자 진료에 매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윤민 서울대 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선임연구원은 “환자가 급증할 때 치료 장소에 여유가 있으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3일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19 확진자 치료를 위한 음압병실 근무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19 확진자 치료를 위한 음압병실 근무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한국이 2.3명으로 스페인(3.9명), 이탈리아(4명)에 비해 꽤 적다. 그런데도 치명률이 낮은 이유는 뭘까. 의료계에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 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의사들이 PAPR(전동식 공기 정화 호흡기)이 없어서 소독해 재활용해서 병실로 들어갔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어떻게 하든 환자를 돌본다”며 “짧은 시간에 환자를 많이 진료하면서 정확하게 진단하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신영석 박사는 “한국의 진료비 수가 제도가 의사 행위별로 산정하는 방식인데, 이게 의사들이 열심히 진료하는 동인이 된 측면이 있다”며 “이탈리아·영국 등은 수가제도가 인두제(환자 인원수대로 보상), 총액예산제(연간 진료비 상한을 정하는 제도) 등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의사가 열심히 진료할 동기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선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임이사는 “한국의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 보급률이 높은 점이 코로나19 사망률을 낮추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