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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 지키되 심리적 거리는 좁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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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차는 11시간, 버스로는 7시간. 고향 강릉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1960년대의 이야기다. 지루했지만 그 거리의 과정과 끝에는 멋진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로 치솟은 빌딩과 임금님들이 살았다던 고궁. 많은 사람들이 한 건물에 모여 산다는 아파트. 공중에 놓인 고가도로에서 보는 네온사인은 밤하늘의 별처럼 휘황했다. 신세계의 풍경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확실한 백신 #마음마저 봉쇄, 상처줘선 안돼 #정부도 의료인 의견 경청해야

거리가 오감을 터치하며 또 다른 신세계로 다가온 건 김수영 시인 때문이었다. 그가 도반들과 술을 흥건하게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장한몽의 대사를 되뇌고, “거리는 모든 나의 설움이다”며 “자작시 ‘거리’를 읊조렸다”(『김수영 평전』 최하림)는 얘기를 읽고서였다. 자동차와 건물 말고 설움도 거리에 있다니…. 거리는 노래가 되어 마음을 절절하게 울리기도 했다. “거리엔 어둠이 내리고/ 안개 속에 가로등 하나/ 비라도 우울히 내려 버리면/ 내 맘은 갈 곳을 잃어/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절규하는 열창을 따라 거리가 되고, 어둠과 가로등과 비를  만났다.

그런 거리가 이번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불청객으로 왔다. 치료제와 백신 소식은 아직 멀고, 반면에 감염의 확산 소식은 가까우니 불안감지수는 높아간다. 중국·한국·이탈리아에서 극성을 부리던 바이러스가 이젠 미국·스페인·독일·영국·스위스 등 서방국가에서 기승을 부리며 세계를 패닉 상태에 빠뜨리고 있다. 최선의 방역 방안이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것이니 거리와 공간의 격리는 당연히 최선책이다.

그러나 거리두기와 공간격리를 포함하는 코로나 대처가 국민의 마음마저 봉쇄하고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헌신하는 의료진과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국민의 단합과 협동심에 찬물을 끼얹는 무책임한 말은 삼가야 한다.

소통카페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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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와 방호복 부족을 지적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그렇게 부족하지는 않다. 의료진이 넉넉하게 재고를 쌓아두고 싶은 심정에서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고 말한 장관. 드라이브·워킹스루 검사, 완치율의 증가와 같은 성과가 있더라도 사망자가 늘어가고, 파산에 몰린 국민의 한숨이 하늘에 닿고, 학교가 문을 닫고, 사회활동이 정지된 시기에 ‘세계적 모범사례가 될 수 있는 코로나 대처’ 운운의 자화자찬은 낯 뜨거운 일이다.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는 라디오 방송진행자와 “(민주당 지지가 낮은) 대구는 (손해보고 파는) 손절해도 된다”고 한 여당 청년당직자의 망발에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초기 대처를 두고 “코로나의 슈퍼 전달자는 정부”라는 지적 외에는 별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제1야당의 한가함도 국민 고통 공감 결여에서 뒤지지 않는다.

인간의 거리감각과 커뮤니케이션의 관계를 다루는 공간학(proxemics)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는 4개의 거리 유형을 발견했다(『The hidden dimension』, 에드워드 홀). 가장 가까운 거리는 ‘친밀 공간’(0~46cm) 으로 신체적 접촉이 일어날 수 있는 영역이다. ‘사적 공간’(46cm~1m22cm)은  좋아하는 사람이 그 안쪽으로 들어오는 게 허용되는 거리다. ‘사회적 공간’(1m22cm~3m66cm)은 친한 관계가 아닌 사람들과 유지하는 거리다. 마지막으로 ‘공적 공간’(3m36cm 이상)은 잘 모르는 타인, 공적으로 만나는 사람과 유지하는 거리 영역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방역은 친한 사람들과 이별하는 간격을 요구하니 지키기가 쉽지 않은 거리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장 확실한 코로나 백신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거리두기가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따뜻한 사회적 관계의 가치를 무시하는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물리적 거리는 지키되 심리적 거리는 좁혀야 하는 까닭이다.

인간과 인간의 상호 격리가 사회 규범이 된 재난의 시기다. 정부도 의료전문가와 과학자의 뒤에 서서 의견을 경청하고 따라야 한다. 그래야 ‘거리두기’의 과정과 끝에서 무언가 개선된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정기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