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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바닥 붙은 누룽지 긁어먹는 맛…스페인 집밥 ‘빠에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전지영의 세계의 특별한 식탁(24)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외식하는 것도 이제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바꾸어 놓은 우리의 일상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한참 어려운 시기에 선배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여행도 갈 수 없고 외식도 하기 어려운 이런 상황에서 가족과 함께 외국 요리를 한번 집에서 해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추억이 될 것 같다. 집에 있는 쌀이랑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야채, 냉동실에 있는 새우 한 줌 등. 이런 재료로 맛있는 외국 요리 중 어떤 것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먹어봤던 빠에야가 바로 떠올랐다. 외국 음식 적응이 힘든 나에게도 빠에야는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빠에야 발렌시아 근교 엘 빨마르라는 고즈넉한 지역에 빠에야 원조 맛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던 생각이 났다. 가는 길 내내 파랗게 펼쳐진 아름다운 호수 알부페라 덕분에 쌀이 좋아 빠에야가 특히 맛이 좋다고 한다.

유럽에서도 스페인은 쌀 소비량이 가장 많고 스페인 중에서도 이 발렌시아 지방이 쌀을 주식으로 많이 먹고 있다.

발렌시아 근교 엘 빨마르 근교 호수 알부페라. [사진 전지영]

발렌시아 근교 엘 빨마르 근교 호수 알부페라. [사진 전지영]

빠에야는 쌀을 기본 토핑으로 해산물이나 치킨 등 육류를 사용하는데, 특별히 발렌시아의 엘 빨마르 지역의 유명한 빠에야는 콩과 녹색채소류, 닭고기나 토끼고기, 달팽이 등을 넣어 만든다고 한다. 토끼고기는 좀 생소하다. 닭고기보다는 약간 질긴 질감을 가지고 있지만 샤프란과 각종 야채와 어우러져 맛있고 특별한 빠에야를 맛볼 수 있었다.

발렌시아의 토끼고기를 넣어 만든 빠에야. 빠에야 맛집 레스토랑 알비페라데발렌시아. [사진 전지영]

발렌시아의 토끼고기를 넣어 만든 빠에야. 빠에야 맛집 레스토랑 알비페라데발렌시아. [사진 전지영]

빠에야는 ‘팬이나 냄비’를 의미하는 프랑스의 고어 빠엘르에서 유래했고 스페인 고어로는 빠디야로 모두 발음이 유사하다. 이런 얕고 둥근 형태에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프라이팬을 지칭하는 말에서 빠에야가 유래해서인지 스페인에서는 빠에야를 만들어 먹는 팬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하고 여기저기 건물 외관에도 장식해 놓았다.

우리가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둥근 프라이팬으로도 빠에야 만들기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빠에야는 스페인어로 ‘얕고 둥근 형태에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프라이팬’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빠에야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에 장식품으로 프라이팬을 걸어놓고 장식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진 전지영]

빠에야는 스페인어로 ‘얕고 둥근 형태에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프라이팬’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빠에야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에 장식품으로 프라이팬을 걸어놓고 장식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진 전지영]

빠에야를 만들기 위해서는 쌀과 양파, 토마토, 마늘 등의 야채류, 매혹적인 노란빛을 내는 샤프란, 그리고 오렌지 향이 나는 장작불과 얕고 둥근 팬이 필요하다. 우리가 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대부분이지만 샤프란과 오렌지 향이 나는 장작불은 구하기가 쉽지 않다.

노란빛이 나는 샤프란은 치자가루나 강황(카레가루) 등으로 대체해 보고 오렌지 향이 나는 장작불은 가스 불에서 뜸을 들이면서 뚜껑을 덮어 누룽지가 생기도록 조리해 보는 방법으로 대신해 보면 어떨까 한다.

쌀, 재료를 조리하는 순서, 황금색의 쌀을 만들어내는 향신료 사프란, 적절한 불의 조절, 넓고 둥근 팬인 빠에예라 등의 요소가 고루 갖춰져야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스페인의 쌀은 물에 씻거나 불리지 않으며, 물 대신 뜨거운 육수를 넣어 조리한다. 스페인의 쌀은 통통하고 불투명한 색을 띠고 있어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먹는 안남미보다는 우리가 즐겨 먹는 쌀과 더 비슷하다. 그런 면에서 집에 있는 쌀을 이용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강황가루나 치자가루로 만든 노란색의 빠에야. [사진 Flickr]

강황가루나 치자가루로 만든 노란색의 빠에야. [사진 Flickr]

쌀을 씻어서 준비한 후 프라이팬에 마늘과 함께 볶다가 강황 가루를 넣어 황금색을 낸 후 쌀을 넣고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주고 기호에 따라 해산물이나 야채, 고기를 추가해 볶다가 육수를 붓고 나무주걱으로 한두 번만 저어주자.

어느새 집안 가득 고소하게 볶아낸 쌀과 마늘 향이 퍼지면서 식욕을 돋워 줄 것이다. 토마토 소스와 물, 백포도주를 넣어 잡냄새를 제거하고 누룽지가 살짝 생기도록 뚜껑을 덮고 뜸을 들이면 군침 도는 맛있는 빠에야가 완성된다.

빠에야는 주로 점심으로 먹는 음식으로, 스페인에서는 일요일 점심에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다고 한다. 먹는 방법에도 에티켓이 있는데 절대로 재료를 뒤섞지 말고 나무주걱으로 각자 먹을 만큼 접시에 덜어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취향에 맞게 레몬 조각을 이용해 즙을 뿌려 먹거나 소스류를 뿌려서 먹기도 한다. 빠에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으로 바닥에 눌어붙은 소카랏을 긁어먹는 재미일 것이다.

우리나라 누룽지처럼 빠에야 프라이팬에 눌어붙은 소카랏. [사진 Flickr]

우리나라 누룽지처럼 빠에야 프라이팬에 눌어붙은 소카랏. [사진 Flickr]

물론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먹어본 오리지널 빠에야 맛은 아니겠지만, 가족끼리 또는 혼자서라도 마치 멋진 곳에 여행을 가서 한적하게 먹는 빠에야라고 생각하면서 즐겨보기 바란다.

오늘은 좀 색다르게 음악도 틀어놓고 와인도 한잔 곁들이면서 먹어보자. 지금은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밖에 나가기도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언젠가 다시 세계를 누비며 맛집을 찾아 떠나는 해외여행을 꿈꾸며.... 지금의 내가 처한 모든 상황에 불평이 아닌 감사한 마음으로….

세종대 관광대학원 겸임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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