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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 시행 첫날 스쿨존 가보니···문제는 '속도' 아니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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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 시행 첫날인 25일 부산 동래구 한 초등학교에 불법 주차된 차량 옆으로 한 어린이가 아찔한 보행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식이법' 시행 첫날인 25일 부산 동래구 한 초등학교에 불법 주차된 차량 옆으로 한 어린이가 아찔한 보행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9살 김민식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후 6개월이 지나 '민식이법'이 전국에서 시행됐다. 지난 10월 발의된 법안의 빠른 통과와 실행은 스쿨존 내 교통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은 것이었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등을 담고 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안전 의무를 위반해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2건으로 이뤄져 있다. 법에 따라 앞으로 스쿨존에서 13세 미만 어린이를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단 운전자가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에 한해서다.

정부는 2022년까지 전국 어린이 보호구역에 무인 교통단속장비와 신호등 설치를 완료하기 위해 올해 총 2060억 원을 투자하여 무인교통단속장비 2087대, 신호등 2146개를 우선 설치한다.

스쿨존 가보니…속도측정기 없는 곳은 '쌩쌩'

2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모 초등학교 앞 도로. 속도측정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은 탓인지 도로에서 학교 정문 방면으로 우회전하는 차량들의 속도가 빨랐다. 남수현 기자.

2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모 초등학교 앞 도로. 속도측정카메라가 설치돼 있지 않은 탓인지 도로에서 학교 정문 방면으로 우회전하는 차량들의 속도가 빨랐다. 남수현 기자.

민식이법 시행 첫날 중앙일보는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을 참조해 최근 2년 내 차대 사람 사고가 일어났던 서울 지역 스쿨존을 방문했다. 먼저 구로구 천왕동 A초등학교 인근 스쿨존. TAAS에 따르면 2018년 이곳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2건은 모두 이륜차가 신호를 지키지 않아 어린이를 다치게 한 사고였다. 이곳엔 어린이보호구역 표시와 속도측정기가 설치돼 있었다. 차량들도 이 구간에서 시속 30㎞ 제한을 지키려 서행했다. 그러나 학교 방면을 제외한 나머지 거리는 제한속도보다 빠르게 달리는 차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인근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여러 이륜차가 빠른 속도로 스쿨존을 통과하는 모습은 아찔했다.

서울 강서구 신방화역 인근 B초등학교 앞. 이곳도 2018년 2건의 어린이 교통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학교 인근에는 어린이집도 4~5곳 모여있어 자전거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어린이들 다수 눈에 띄었다. 이곳엔 횡단보도 내 옐로카펫(운전자가 아이들을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지정된 횡단보도 대기소)과 과속단속카메라가 설치돼 있었지만 속도 측정기는 없었다. 스쿨존 표지판도 정문을 지나야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스쿨존 내 차량 속도는 제한 규정을 넘어섰고 9차선 대로에서 학교 방면으로 우회전하는 차량들은 빠른 속도로 학교 정문을 지나갔다. 도로교통공단 측은 "신규로 설치되는 대량의 카메라에 대한 인지가 늦어져 발생 할 수 있는 불편을 최소화하고 교통법규 위반차량 감소를 위해 신규 설치지점의 안내와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속도보다 불법주정차가 아이들 안전에 더 문제" 

정작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차량 속도보다 불법주정차가 문제'라는 의견을 내놨다. 구로구 A초등학교 스쿨존에서 만난 성모(40)씨는 "나도 아이 둔 엄마지만 운전자 입장에서도 걱정이 된다"고 운을 뗐다. 성씨는 "민식이 사건도 불법주정차 때문에 시야 확보가 안돼 생긴 사고 아닌가"라며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불법주정차를 단속해서 시야 확보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강서구 B초등학교의 학교 보안관 박모(58)씨도 "학교 현장에서는 민식이법보다 주정차 단속이 더 절실하다"며 "차량 속도는 등하교 시간에 보안관이 통제하면 되지만, 불법 주정차는 권한이 없어 단속이 힘들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에는 안전 의무를 위반해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방안과 과속단속카메라 등 스쿨존 내 장비 설치 의무화 방안을 담고 있지만 정작 불법 주정차 관련 조항은 없다. 이와 관련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일단은 불법주정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기 위해 운전자들이 스쿨존 내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멈춰서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스쿨존 내 주정차 위반 차량에 대한 범칙금・과태료를 현행 일반도로의 2배에서 3배로 상향하도록 도로교통법 시행령을 하반기 중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수현·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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