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박테리아 실태… 검출도 처방도 손못대

중앙일보

입력

´슈퍼 박테리아 비상´ 이 걸렸다.

이번에 발견된 반코마이신 내성 (耐性) 황색 포도상구균 (VRSA:vancomycin 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은 특히 면역력이 약해진 인체에 들어올 경우 온갖 감염을 심화시키며, 현존하는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아 결국 패혈증 (敗血症) 을 유발해 생명을 위협하는 초강력 세균이다.

전문가들은 VRSA가 널리 퍼질 경우 맹장염.제왕절개 같은 간단한 수술도 마음놓고 할 수 없으리라고 경고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균의 주된 감염장소가 병원이라는 점. 병원에는 암환자.수술환자와 각종 감염 환자가 모여들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환자의 피부나 환자가 만진 물건과 접촉하면 옮을 수 있다.

VRSA의 출현은 약을 마구 복용해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내성률 (耐性率) 을 있는대로 키워온 우리나라에선 어쩌면 자연스럽다고까지 할 수 있을 사태다.
내성률은 항생제 투여후 세균 1백마리당 살아남는 세균의 숫자로 표시하며 항생제를 많이 쓸수록 높아진다.

의료보험연합회가 지난 3월 공개한 ´97년 의료보험 진료내역 조사´ 에 따르면 국내 총진료비 가운데 약값의 비중은 32.5% (미국의 3배) 며 그중 51%가 항생제 비용이다.

외국은 항생제의 비중이 약값의 10% 정도. 우리의 항생제 의존도는 세계 최고며 위험수위를 뛰어넘은지 오래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지난 3월 발표한 12개 국가의 ´폐렴구균 페니실린 내성률´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내성률은 84%나 된다.

항생제 투여를 까다롭게 규제하는 미국.영국.프랑스의 평균 내성률은 12%다.

현재 황색 포도상구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치료약은 반코마이신. 이 약은 페니실린의 대체약인 메티실린에 내성을 갖게 된 황색 포도상구균이 퍼지자 50년대에 개발해 쓰기 시작, 국내 생산액이 92년 41억원에서 97년엔 1백42억원으로 급증했다.

96년 일본에서 등장한 VRSA는 바로 이 약을 꺾어버린 슈퍼 박테리아다. VRSA 외에 다른 세균들의 내성 확산도 심각하다.

세브란스병원의 88년 조사에서 폐렴구균의 페니실린 내성 비율은 29%였지만 93년 조사에선 77%로 5년새 3배나 늘었다.

이런 추세로 볼 때 VRSA 역시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황색 포도상구균 감염환자의 대부분을 반코마이신으로 치료해 왔기 때문에 그 속도가 더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의대 내과 최강원 (崔康元) 교수는 "자연계에는 항생제에 대항할 수 있는 돌연변이가 수백만분의1 비율로 일어나는데 항생제 남용이라는 인위적 요인이 작용하면 다수인 비돌연변이 세균이 죽고 내성을 가진 돌연변이 세균들이 급속히 증식한다" 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나라 병원 태반이 VRSA 검출 능력조차 없고 법정전염병이 아니어서 당국에 신고할 의무도 없다는 점. 이 때문에 감염 사실을 숨기고 격리도 하지 않으면 균이 급속히 퍼져나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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