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한숨 맘아파" 밥굶고 화장실 참아 번 돈 기부한 택시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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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택시기사가 지난 16일 전주시에 익명 기부한 현금과 손편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외된 시민들을 위해 써 달라"며 중간 퇴직금 168만3000원 전액을 기부했다. [사진 전주시]

한 택시기사가 지난 16일 전주시에 익명 기부한 현금과 손편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외된 시민들을 위해 써 달라"며 중간 퇴직금 168만3000원 전액을 기부했다. [사진 전주시]

"저는 택시기사인데요. 이것 좀…."

전주시장 비서실 찾아 168만원 기부 #중간 퇴직금 전액과 손편지 전달 #"코로나19 극복 위해 써달라" 당부

지난 16일 전북 전주시 노송동 전주시청 3층 시장 비서실. 한 남성이 손에 뭔가를 든 채 쭈뼛거리며 나타났다. 비서실 직원이 '어떻게 오셨냐'고 묻자 그는 띠지에 싸인 돈뭉치와 손편지를 내밀었다. 꼬깃꼬깃한 5만원권과 1만원권, 1000원권이 섞인 돈은 168만3000원이었다.

파란색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제가 근무하는 한일교통 택시회사에서 중간 퇴직금을 받아 퇴직금 전액(1,683,000원)을 성금으로 기부합니다. 전주시에서 어렵고 소외된 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저도 어렵고 힘들지만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택시기사는 조심스레 기부를 결심하게 된 전후 사정을 털어놨다. 그는 "코로나(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다들 어려운 요즘 택시 타는 승객마다 하는 원망과 한숨 소리가 제 마음을 아프게 한다"며 "사실 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하루 14시간 일하고 있다. 손님이 있으면 아무리 화장실이 급해도 태우게 되고 밥도 굶고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승수(왼쪽) 전주시장이 중간 퇴직금 168만3000원을 전주시에 기부한 택시기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김승수(왼쪽) 전주시장이 중간 퇴직금 168만3000원을 전주시에 기부한 택시기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그러면서 "퇴직금을 받아서 '가구를 살까' '침대를 살까' '아이들을 위해 쓸까' 생각이 많았다"며 "그러다가 코로나19 위기 극복 정책에 대한 전주시장님 인터뷰를 보고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이 돈을 써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직업 외에 이름 등 신원이 밝혀지는 걸 끝까지 거부했다.

비서실 직원들은 택시기사에게 "기부금을 어려운 분들에게 꼭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겠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김승수 시장도 "택시업계도 어려운 시기에 큰 힘이 돼 주셨다. 전주시민인 게 자랑스럽다"며 그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전주시는 택시기사의 기부금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을 위한 물품 지원과 의료 및 방역 활동에 쓸 예정이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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