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Syphylis)

중앙일보

입력

Girolamo Fracastoro(1478-1553)의 시 Syphilis sive morbus Gallicus
(Syphilis or French disease)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속설에 바람을 피우려면 ´삼불교´ 즉 체면 불고, 돈 불고 그리고 병 불고를 감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절제되지 않은 쾌락의 추구는 항상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가 보다. 한때 유럽을 휩쓸다시피 한 매독도 페니실린이라는 특효약이 개발되어 한물 가는 바람에 오입장이들이 거칠것이 없었는데 천형의 질환인 AIDS가 어디선가 튀어나왔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꼭 1백년전인 1492년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여 수맣은 새로운 것들이 구대륙으로 건너왔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매독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최소한 신대륙 발견 이전에는 매독이 구대룩에서 위세를 부린것 같지는 않다.

프랑스의 샤를르 8세라는 왕은 제왕으로서는 사람 됨됨이가 약간 모자라는 축이었는데도 약간 과대망상 끼가 있어 자신이 조상으로 여기고 있는 샤를르마뉴 대제의 위업을 계승한다는 생각에서 스페인 사람도 낀 다국적 군대를 이끌고 이태리를 침공하였는데 전쟁인지 국수주의 같은 것이 작용하여 이태리 사람은 ´프랑스 병´(Morbus Gallicus), 프랑스 사람들은 ´나폴리 병´(Morbus Neopolitanus)라 하여 정체도 불분명하고 더럽기짝이 없는 병을 상대에게 전가하였는데 실제로는 원정에 참가한 스페인 사람들이 원인을 제공한 것 같고 원정군이 해체되어 군인들이 연고지를 찾아 유럽 각지로 흩어진 것을 계기로 전 유럽으로 확산하게 된 것 같다.

매독의 확산은 의외로 속도가 빨라서 인도, 중국을 거쳐 1515년 경에는 우리나라에도 유입된 것 같고 일본에도 비슷한 시기에 매독이 전국적으로 퍼져서 혼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어느 청년이 매독이라는 진단을 받고 대단히 기뻐하길래 이상하게 여긴 의사가 연유을 물어보니 자기가 매독이면 당연히 집안의 하녀가 매독에 걸릴 것이고 그 다음에는 아버지, 이어서 어머니가 매독환자가 될 것인데 그러면 위선에 가득찬 꼴 보기 싫은 마을 교회 목사가 매독에 걸릴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고 답변했다는 농담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매독이 전파되었으니 중세에 억압되었던 인간의 본능이 르네상스를 맞아 자유로워 질 무렵 그 대가로 받은것 치고는 너무도 대단한 것이다. 마치 현대의 동성연애가 만연의 기미를 보이는 것에 대하여 AIDS라는 철퇴가 내린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매독은 그 충격파가 대단하여 문화적 효과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유행하였던 가발은 매독으로 빠진 머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고 청교도가 교세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매독에 대한 공포가 극심할 무렵 절제된 생활을 요구하는 교리가 민중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매독은 프랑스병 혹은 나폴리병이라고도 했지만 영국에서는 천연두 즉 smallpox에 대립되는 뜻으로 greatpox라 하고 프랑스에서도 같은 의미의 la grosse verole라고도 하였는데 1530년에 프라카스토로가 그리스 신화의 목동이 앓았던 나쁜 전염병에 관한 시를 발표한 뒤로 목동의 이름인 Syphilus에서 Syphilis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매독(梅毒)이라 하기전에 중국에서 광동창(廣東瘡),양매창(楊梅瘡)이라 하여 전자는 유행의 근거지를, 후자는 증세의 하나인 발진의 색깔이 매화꽃 같다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매독은 양매창에서 온 것 같다.

매독의 다른 이름인 lues는 라틴어로 그저 전염병 혹은 역병이라는 뜻이어서 매독의 정확한 병명은 lues venerea이지만 lues만으로도 매독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어 간에 생긴 매독은 lues hepatis, 뇌매독은 lues nervosa, 말기매독은 lues tarda로 쓰이고 있다.

중앙대 의대 김건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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