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일 후 예상되는 북한주민의 문화충격 적응 문제①

중앙일보

입력

우리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민족적 과제인 남북통일이 성공적이 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의 궁극적인 주체가 남북한의 일반 주민, 즉 "사람"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통일의 목적이 우리 민족의 분단의 한을 풀자는 바도 있으나, 그 보다도 통일된 사회에서는 남북한 개개인의 사람들이 다같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누림에 있다고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보다도 남북한 사람 개개인의 행복감, 건강함, 보람, 희망 등 정신적인 측면이 궁극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통일 후 상황 전개 과정에 있어 정치, 사회, 경제적 측면의 통합이 우선적이겠으나, 역시 남북한 사람들 간의 상호적응 문제가 최종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통일이 남북한 사람들에게 단기적으로는 상호 적응상의 갈등을 야기하지 말아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통일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불편해하거나 마음이 상하거나, 한이 더 쌓이거나, 흔히 예상되는 바로 새로운 불평등 구조가 생기고 그래서 장기적으로 사람들이 더 불행해진다면, 통일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최종적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통합에 따르는 정신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상호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인 과제이다.
이러한 측면은 독일통일의 경우 "내적통일"이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의 경우 "사람의 통일"이라고 부르는 바와 같다.

◇독일통일의 경우

우리가 남북한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동서독 통일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그 통일 후 경과가 어떠했는지를 연구하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990년, 독일의 통일은 많은 문제에 대한 충분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서둘러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실로 엄청난 변혁이 있었고, 이어서 실업문제, 사회적 불안감, 불확실한 미래 등이 다가왔다.

동독에 밀어닥친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상황은 많은 정신적 적응 문제를 야기했다. 그러나 독일 정치가들은 초기에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채 시간을 허비하였다고 한다. 서독인 들의 우월감과 동독인 들의 이등국민이라는 좌절이 교차하였다. 서독 쪽은 통일로 인한 추가 부담들을 순순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동독 사람들은 기대에 미흡함을 불평하고 있다. 초기에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던 따뜻했던 동포애는 이미 쇠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상황을 핑계삼아 "오씨", "베씨", "외국놈"하며 서로 쌓이고 쌓인 불만을 남에게 터뜨리고 있다.

동서독 사이를 가로지르는 깊은 골이 목격되고 있으며, 특히 적지 않은 청소년들의 마음속에도 ´장벽´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 특히 외국인 차별, 인종주의, 반유태주의 등과 같은 네오나치즘이 고개를 들고 있다. 독일 과연 이러한 당면한 과제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는지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 주고 있다. 사회지도자들은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반민주 세력의 공격, 전반적인 차별 대우, 그리고 폭력으로부터 독일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대하는 능력과 자기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형성할 수 있는 역량과 비판 능력, 자기를 볼줄 아는 눈등을 열심히 키워 나가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하고 있다.

●문화충격과 정신의학적 이론

"사람의 통일"이라는 개념에 대해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겠으나 본 논문에서 필자들은 정신의학적 접근 방식을 선택하고자 한다. 의학이란 본래 실용적 내지 실증적 학문으로서 그 목적은 사람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 바꾸어 말하면 건강을 해친 경우 그 원인을 알아내고 병을 치료하는 기술에 대한 연구이다. 의학은 때로 병의 근원적 원인을 몰라도 경험에 의해 조금이라도 사람의 고통을 덜고, 건강이 회복되도록 노력한다는 점에서 엄격한 학문으로서 제한점이 있으나 이는 또한 의학의 장점이기도 하다.

통일이라는 사건을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소위 "문화충격"(culture shock)이라는 개념에 해당된다. 이는 흔히 이민자들에 새로운 사회에 들어갔을 때 나타내는 현상이다. 즉 문화충격이란 이민자들이 과거에 가졌던 관습, 생활방식, 가치관 등이 이주한 낯선 사회에서의 그것들과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느꼈던 혼란과 갈등 그리고 그에 의한 정신장애의 발생에 대해 이름 붙여진 개념이다. 이 개념은 그 후 확대되어 입학, 결혼, 입사, 이사 등 일상생활에서의 문화충격이나 난민, 수용소(concentration carp), 사회통합, 국가통일 같은 거대한 사건에 있어서의 문화충격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어 왔다.

이와 같이 남북통일이 되는 과정중에 남한사람이 북한사회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될 때, 또는 북한 사람이 남한사회 속으로 들어오게 될 때, 남북한 사람 모두 문화충격을 느끼게될 것이다. 그 충격의 정도에 따라 좌절, 피해의식, 반항, 흥분, 범죄 등과 같은 적용문제를 나타낼 것이며, 일부에서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또는 정신병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통일, 더구나 그것이 만일 갑자기 닥치는 통일이라면, 이는 특히 북한 사람들에게는 흔히 말하는 문화충격 이상의 충격을 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통일 후에 나타날 사태가 이와 같이 예측된다면 우리는 미리 이에 대해 대비할 필요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대비에는 원인발견, 진단과 치료 및 예방이라는 의학적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다. 정신의학은 임상의학의 하나로서 정신장애(통일의 경우 문화충격)를 치료하고 정신건강을 회복시키는데 그 목적과 유용성이 있다. 정신의학도 의학의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는 바, 그 연구방법과 분야를 사회적인 시각에서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연구과제가 주어진다.

문화충격 또는 적응문제가 어떤 집단에 얼마나 심한 정도로 존재하는가?
(역학) ; 문화충격 또는 적응문제의 배경, 소인 및 유발 인자, 즉 원인은 무엇인가? (원인론) ; 문제, 또는 문화충격이 정상적 범위 이내인가, 또는 고통이 되고 생활을 방해할 만큼 병적인가? 문제가 실제적으로는 무엇인데 겉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증상론) ;문화충격 또는 적응문제의 핵심은 무엇이며, 이를 무엇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가? 또한 그 파생되는 주변 문제와 유사한 다른 문제들과 어떻게 구별하는가? (진단학) ; 시간에 따라 어떻게 그 양상이 변화하며, 그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경과) ;문화충격 또는 적응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해결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해결과정 때문에 나타나는 원치 않는 부작용과 합병증은 무엇인가? (치료학) ; 문화충격 또는 적응문제가 미래에 나타나지 않도록 미리 조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방학) 의학적 방법의 또 하나의 다른 특징은 개인 증례연구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장애에 대해 원인과 그 치료성과를 연구하고, 이들 증례들을 다수 모아 그 공통점을 근거로 비로소 일반화 한다.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듯 개인의 문제는 사회현상에 반영되며, 사회의 문제도 그 구성원인 개인에게 반영된다. 한 개인을 이해함으로써 집단과 전체사회의 이해로 접근할 수 있다.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한 사람의 주민, 한 사람의 지도자 또는 한 사람의 탈북자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통일과 관련하여, 남북한 사람들의 정신구조, 행동반응 및 감정 반응, 그러한 반응들의 원인적 배경, 문제해결 방법, 예방 등 심리적 적응 내지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였다. 더구나 이들 연구자들을 정치나 경제분야와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일관된 그리고 구체적 방안을 내놓은 연구가 부족했다고 하겠다.

저자는 탈북자의 남한사회에 대한 적응에 관한 연구, 그리고 독일 통일에 있어 구동독인들의 통일사회에 대한 적응에 관한 연구를 한 바 있다.
이를 기초로 하여, 향후 통일후 얼마나 많은 북한 사람들이 어떤 문화충격에 의한 어떤 적응문제를 경험할 것인가. 그 증상은 어떠하며 그 원인은 무엇이며, 그리고 이를 줄이고 상호 작용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탈북자 연구

- 저자의 탈북자 연구의 결과는 일반적으로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원인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특성, 북한에서 받은 순종과 적응을 강조한 교육을 받은 경험, 북한에서의 살아 남기위한 이중적 생활 경험 등이 토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탈북자들이 보인 적응상의 문제점이 여러 가지로 제시되었다.

남한 사회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부족, 돈 문제, 언어차이 문제, 영어나 한문을 모르는 것, 직업적 기술과 지식의 문제, 사회연계체제의 빈약, 자의식과 죄책감 등의 심리적 문제, 의식구조 특징에 따른 문제, 기타 구조적인 문제 등으로 대별될 수 있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탈북자의 가장 중요한 실제적 적응문제는 안정된 "경제문제"였으며, 그들의 정신건강도 이에 크게 의존해 있었다. 또한 정신건강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사회 적응에 더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나이가 젊을수록 정신건강도 나빴다.

또한 북한에서의 주요 사회 배경에 따라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적응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탈북자의 상황이 모든 북한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해당되지는 않더라도 통일사회에 대한 북한사람들의 향후 적응문제를 예측케하는 자료들이다. 이를 기초로 향후 통일사회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상호적응하는 일과 그로 인한 갈등상황에 대해 추측해 보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적응문제의 역학

- 통일과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북한주민이 문화충격과 적응문제에 고통받을 것인가 하는 역학의 문제는 현재 구체적인 자료가 없어 대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탈북자 연구를 통해 추측컨데 거의 모든 주민이 이 문제로 고통받을 것으로 예상된다.왜냐하면, 북한은 사상 유례없는 완전히 통제된 폐쇄국가로 주민들은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극도의 무기력과 빈곤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소한 문화변동에도 큰 충격을 받을 취약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계층에 따라 그 적응 양상은 다소 달라질 수도 있으리라 본다. 즉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그 정신적 단순성으로 인하여 그 충격이 덜 할 것이다. 청소년들은 그들 특유의 호기심으로 새로운 사회를 환영하고 탄력성 있게 잘 적응할 것같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들에서는 청소년 특유의 반항심리 때문에 비행이나 집단적 반발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여성들에서도 그 충격을 덜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북한 여성이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북한사회의 차별에서 벗어나 통일사회에서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기술자는 그런 대로 기술로서 직업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용이할 것이나, 사무직은 더 많은 곤란을 경험 할 것 같다. 지도층은 탈북자들 중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았던 사람들이 남한생활 적응에서 그러했듯이 북한 정치체제 안에서 생존해 왔던 경험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가장 많은 고통을 겪을 계층은 청년기와 중년기의 보통 사람들일 것으로 생각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