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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 전 부총리 별세…'서강학파 트로이카' 역사 속으로

중앙일보

입력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중앙포토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중앙포토

 13일 별세한 이승윤 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한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일군 대표적 인물이었다.

 1931년 인천에서 태어난 이 전 부총리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주리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상과대 조교수를 거쳐 1964년 서강대 경상대학 교수를 지냈다. 지금도 서강대 경제관에는 ‘서강학파 1세대’로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고인은 작고한 남덕우 전 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와 함께 ‘서강학파 트로이카’로 불리며 철저한 시장경제 중심의 성장을 강조했다. 서강학파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고도 성장을 이끈 서강대 교수 출신의 경제 관료 그룹을 말한다.

1999년 5월 서강대 출신의 전 현직 교수와 동문을 주축으로 한 '서강 경제인 포럼' 창립식에 참석한 이승윤 전 부총리(왼쪽 세번째). 중앙포토

1999년 5월 서강대 출신의 전 현직 교수와 동문을 주축으로 한 '서강 경제인 포럼' 창립식에 참석한 이승윤 전 부총리(왼쪽 세번째). 중앙포토

 이 전 부총리는 서강학파 1세대로 수출 중심의 선(先) 성장, 후(後) 분배를 주장했다. 고도 성장기의 경제개발 계획을 주도해 한국 경제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인을 “경제학 지식을 실제에 적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실천주의자”로 회상했다. 김 교수는 “고인은 미국에서 교육받은 경제학을 한국에 소개한 선구자 중 한 분”이라며 “당시 한국에 화폐 금융론, 현대적 의미의 금융경제학을 소개했다”고 말했다.

1991년 1월 14일 노태우 전 대통령(오른쪽 두번째)과 '경제 안정과 성장기반 확충' 대책 회의를 하고 있는 이승윤 전 부총리(오른쪽). 중앙포토

1991년 1월 14일 노태우 전 대통령(오른쪽 두번째)과 '경제 안정과 성장기반 확충' 대책 회의를 하고 있는 이승윤 전 부총리(오른쪽). 중앙포토

 이 전 부총리는 1976년 제9대 국회의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직을 맡았다. 이후 제10대·제13대·제14대에도 국회의원을 지냈다. 재무부 장관(80~81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90~91년)으로 경제 정책도 이끌었다. 재무부 장관 시절에는 해외 차관의 도입·확대를 통해 석유 파동과 대흉작으로 어려웠던 경제가 고비를 넘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인 90~91년 부총리를 지낼 때는 전임인 조순 부총리와 달리 성장 기조를 강조했다. 공직 사회를 떠나 있을 때도 해외건설협회장, 금호그룹 고문 등을 지내며 국내 기업의 성장과 해외 진출을 도왔다.

재무부 장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으로 세무,금융 간담회를 하고 있는 이승윤 전 부총리(왼쪽)

재무부 장관 시절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으로 세무,금융 간담회를 하고 있는 이승윤 전 부총리(왼쪽)

 유족은 배우자 정온모 씨와 아들 준수(중국 헝사이신에너지그룹연구원장)와 딸 진수, 연수, 사위 김시현(변호사), 전경훈(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 사장) 등이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 발인은 16일이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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