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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바꾸는 세계 정치 지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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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지난 가을 학기 조지타운대의 ‘아시아의 국제 관계’ 수업에서 필자가 아시아 국가 간의 지정학적인 관계를 가장 악화시키는 요인이 무엇일지를 물어봤다. 학생들은 대부분 테러·범죄·전염병 같은 비국가적 요인보다 ‘기후 변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다음 학기의 학생들은 만장일치로 ‘전염병’을 택할 것 같다.

국가주의, 미·중 대립 깊어질 듯 #한·미·일 집권 기반 흔들릴 수도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 수를 수만 명에서 수천만 명까지 예상한다. 사망자가 수만 명에 그친다면 세계 각지의 정치·외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지각변동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수만 명이라면 미국에서 매년 교통사고나 총기 사고로 사망하는 숫자와 비슷한 수치다. 반면 극단적인 시나리오대로 수천만 명이 사망할 경우 각국 지도자들의 통치 정당성과 무역에 큰 악영향을 미치고, 국제 관계에도 역사적인 충격을 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까지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이번 사태의 지정학적 영향에 대해 몇 가지 예측을 해 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바이러스 확산이 심해질 경우 다음과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첫째, 국가주의가 심화한다. 토머스 라이트와 커트 캠벨이 ‘애틀랜틱 먼슬리’ 최신호에서 지적한 것처럼 9·11테러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거대한 위기 이후에 각국의 정부들은 국가 간의 차이를 배제하고 보호주의를 지양하며 국제적인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과 국가주의가 부상했고, 그 결과 지도자들은 국제적인 협력을 도모해 당면한 위기에 맞서기보다 다른 나라나 다른 정당을 헐뜯는 데 골몰했다. 서양 소셜미디어에는 중국인들이 박쥐를 먹는다는 내용을 담은 혐중(嫌中) 영상이 올라올 뿐 아니라,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를 하다가 바이러스를 유포시켰다는 주장까지 퍼졌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글이 넘쳐난다. 중국 정부는 다른 코로나19 관련 정보와 달리 이를 통제하지 않는다.

둘째, 이념적 경쟁이 심화한다. 필자는 중국의 한 고위급 간부가 “일본과 한국은 민주주의 체제여서 바이러스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므로 중국을 위협한다”고 해서 놀랐다. 이미 중국과 민주주의 진영 간에는 중국의 독재 모델과 개방적인 민주주의 모델 중 어느 쪽이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더 적합한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양 매체는 대만이 중국보다 바이러스에 성공적으로 대처했다고 보도하면서 이 사실이 중국의 약점을 보여준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선전 기관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가속화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성장은 확연히 부진해졌고,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 19로 인해 중국에 1단계 무역 합의를 이행할 시간을 연장하게 됐다. 중국은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 경우 미국의 보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넷째, 정권을 잡은 정당의 세력이 약화한다. 트럼프 대통령, 아베 총리,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코로나19 확산 초기 단계에서 실책을 저질렀다. 한국의 경우, 4월 총선 때 정치적 손실 정도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올해 가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과 2021년에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아베 총리도 감염 확산 정도에 따라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지금까지는 협력보다 갈등이 심화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도자들이 남 탓을 해봐야 선거 결과와 국민의 건강만 악화시킬 뿐이다. 국가 간 상호 지원과 협력을 강조하는 편이 정치·경제 및 공중위생에 이롭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