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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에 주부바람 거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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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간장 내리셔도/수절은 못합니다./이 봄날 몸살을 담은/저 꽃들을 보오소서 /강물도/끄지 못하는 불/쇠빗장은 거두소서.』
이 시는 최근 나온『문학과 의식』가을호 신인작품상 시조부문 수상작인주부 최윤정씨의 연작시조「고해」중 한 수다. 중년 여성의 . 농염한「바람 끼」가 수백 년 세련된 민족 정통시 시조로도 다스려지지 않으며 파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조에 어떠한 이유로도「간장」의 형벌은 내릴 수 없다. 진솔한 고해식 자기진술을 통해 정숙하고 안정된 틀 속에 안주하려는 시조의 정체성에 충격을 주면서 「끼」가 감동으로 승화돼 있기 때문이다.
주부들에게는 낯부끄러운 춤바람만 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바람」도 불고있다. 신문사 및 문예지·대학의 평생교육원·문학단체·일부 백화점에서 개설한 문학강좌 수강생대부분을 주부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또 각 일간지의 신춘문예, 각 문예지의 신인상제도 등 경선을 통해 문단에 떳떳이 진출하는 주부들도 늘어나고 있다.
89년도 6개 중앙지 신춘문예 소설부문 7명중 중앙일보의 강성숙씨(48)를 비롯, 윤영희(41·조선일보) 손숙희 (34·서울신문) 김현숙(39·동아일보단편) 한정희(39·동아일보중편)씨 등 5명이나 당선돼 예년에 없던 주부열풍을 연초부터 몰고 왔다.
최윤정씨는 건설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고2 딸, 중3 아들을 둔 40세의 주부다. 남편과 자식들을 직장과 학교로 보낸 무료한 낮 시간을 활용, 87년 봄부터 덕성여대에서 개설한 평생교육원 문학강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글 잘 쓴다는 소릴 곧잘 들었습니다. 결혼하고, 자녀 양육해놓고 빠져드는 중년의 허탈감을 소녀적 문학의 꿈을 불러모아 상쇄시키려했습니다.』
최씨의 경우처럼 7∼8명의 주부가 문학강좌를 모태로 하여 만든「여백」처럼 근년들어 주부문학동인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났다. 이들은 후기산업시대의 특징이랄 수 있는 개성 있는 아마추어문단시대를 열어가며 기성문단도 넘보고있다.
이제 문제는 기성문단이이들을 올바로 수용하고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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