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가 논쟁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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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은 외국 독재자를 필요한 경우 권좌에서 끌어내릴 때 「암살」 이라는 무기경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미 정계가 큰 논쟁을 벌이고 있다.
외국, 특히 미 우방의 지도자들이 들으면 섬뜩하기까지 할 이 같은 논쟁은 지난3일 노리에가 장군을 축출하려던 파나마군인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뒤 미행정부와 의회·CIA, 그리고 전직 관료들까지 끼어 들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미국의 정보기관이나 정부관리가 독재자의 암살까지를 포함한 쿠데타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70년대 중반 쿠바의 카스트로, 콩고의 루뭄바 대통령의 암살기도가 말썽이 되어 국내외의 비난이 높아지자 76년 포드 당시 대통령이 이 같은 행동을 궁금하는 명령을 내린 이래 암살을 금기시해 왔다.
그후 도덕정치를 부르짖는 카터 대통령이 『미국정부에 고용되었거나 대리하는 어떠한 개인도 암살음모에 개입할 수 없다』 고 선언함에 따라 미 정부기관에 의한 외국지도자암살금지조치는 더욱 강화됐다.
여기서 「미 정부기관」이란 흔히 국내외에 막강한 정보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중앙정보국(CIA)으로 인식되어 왔다. CIA가 미국에 비협력적이거나 협력적이지만 독재로 국민들의 원성을 사 미국의 장기적인 이익에 손실을 준다고 판단될 경우 현지군부세력이나 반정부세력을 부추겨 지도자를 교체해온 것은 공개된 비밀이기도 했다.
이 교체과정에서 지도자가 암살되는 경우도 많아 월남의 고딘 디엠,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 등이 그 대표적 케이스로 지적되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문제를 다시 끌고 나온 것은 대통령령으로 이 같은 행동을 금지 당하고 있는 CIA다.
허용되기만 한다면 외국지도자 암살음모에 개입할 책임과 권한, 그리고 충분한 능력을 갖고있는 CIA의 윌리엄 웹스터 국장은 최근 『쿠데타 과정에서 지도자 암살에 관한 미국의 규정이 완화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파나마쿠데타가 실패, 미국이 눈의 가시처럼 여기던 노리에가 축출계획이 수포로 돌아감에 따라 『도대체 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는 비판과 함께 부시대통령의 결단력부족과 CIA의 정보부족이 지적된 후 나온 것이다.
미국은 2년 전부터 마약범죄자로 미연방배심원에 기소되어 있는 노리에가의 퇴진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서는 군부쿠데타라도 기대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파나마군부를 철통 같이 장악하고 있는 노리에가를 축출하기 위한 군부쿠데타가 실패함에 따라 그 진상이 무엇이든 부시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웹스터 국장의 발언은 자신과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모면키 위해 계산된 것이 분명하지만 미국의 외국 내정간섭의 범주를 둘러싼 논쟁을 파생시켰다.
부시 대통령이 그의 발언을 두둔하고 있는 가운데 모이니헌 상원의원 등 상하의원들은 평화와 법을 지켜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해서는 안될 말을 해 미국의 대외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88년 레이건 행정부가 노리에가 암살 가능성을 포함한 「파나마3」 이란쿠데타 계획을 추진했으나 상원정보 위의 강력한 반대로 좌절되었음이 밝혀져 논쟁은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미정부가 과거 행정부의 명령을 바꿔 또다시 미 정보기관들이 과거와 같은 「더러운 작전」을 하도록 「명시적」으로 허용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여론에 몰린 행정부가 명시적은 아니지만 묵시적으로 암살을 포함한 노리에가 장군 축출음모를 꾸밀 가능성은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뉴욕=박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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