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표적 "조준"…낙관금물|잇단 남북접촉…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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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남북대화와 교류신청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자칫 남북한간에 대립과 갈등이 완화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그러나 실제는 남과 북이 기존의 원칙을 전혀 바꾸지 않고 각기 다른 표적을 향한 전술적 기교에 변화를 가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신중한 관찰이 필요하다.
즉 북한은 「남북회담」을, 우리는 「인적교류」를 추진하는 기본축 위에 서 있다. 말을 바꾸면 북은 자신들의 대남 홍보 전을 강화할 수 있는 선전장을, 남은 실질교류를 통한 북의 「동구화」 를 노리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 남북한의 이러한 기본태도가 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문익환목사와 임수경양 방북사건으로 중단됐던 남북대화는 북한 측이 지난7월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치르고 우리가 지난9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내놓으면서 재 가동 됐다.
9월27일 1차로 가진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은 벌써 세차례나 했고 오는 11월8일 4차 접촉을 갖기로 되어 있으며 이미 고향방문단및 예술단 교환날짜 (12월8일) 를 정했다.
또 10월12일 고위 당국자회담 예비회담, 10월20일 체육회담, 10월26일 국회회담 준비접촉을 가진데 이어 11월15일 고위 당국자 예비회담, 11월16일 체육회담, 11월29일 국회회담이 다시 예정되어 있다.
4가지의 남북회담이 진행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북한 측의 일관된 태도는 문익환· 임수경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 요구로 집약된다.
북의 이런 태도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남북 고위 당국자회담 예비회담과 국회회담등에서 두드러진다. 이 두 회담은 북한 측의 선전공세 때문에 결국 실질토의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끝났으며 앞으로의 회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성사 가능성이 있는 회담은 적십자 실무접촉과 체육회담을 들 수 있다. 북한은 그러나 남북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을 논의하는 적십자 접촉에서 예술공연단의 규모를 고향방문단과 같은 3백명으로 하자고 제안함으로써 이산가족의 만남보다 대남 선전에 목표를 두고있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북은 예술단 공연 횟수를 2회에서 4회로 늘리고 공연실황을 TV로 생중계 하자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나름대로 훈련된 예술공연을 남쪽 국민에게 보여줌으로써 북에 대한 적대감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북한 측은 그러나 인적교류에 대해서는 대단히 소극적이다. 최근 들어 남쪽에서 여러 차례 방북신청을 하거나 북한주민 초청승인을 요청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빼고있다.
10월8일 천주교의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는 북한 측이 로마 교황청에 참가의사를 밝혀놓고도 정작 참가 초청장을 보내자 침묵으로 무시해 버렸다. 10월14일의 한강연등대법회에도 불교 측이 북한신도의 참석을 초청하고 기대원스님까지 평양에 보냈지만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는 최근 원광대의 북한학자 학술회의 초청, 경희대 사학과 교수· 학생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하기 위한 방북승인 신청, 고려대의 남북 유학생 교류 등에 대해 모두 북한 측과 접촉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조류학자 원병오박사와 한국생물공학화의 내년 5월 국제학술회의에 북한학자 4명 초청신청도 승인할 방침이다.
정부는 대표성이 인정되고 정치적 목적이 아닌 순수교류 차원의 방북과 방한초청에 대해서는 모두 허가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정부가 북한과의 교류신청에 전례 없이 「관대한」 이유는 물론 북한 측이 쉽사리 교류에 응해올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고려됐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인적교류에 응해온다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손해 볼게 없다』 는 판단을 하고있다.
북측 사회는 폐쇄사회니 만큼 인적교류가 누적되다보면 자연히 개방의 물결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 동구처럼 개혁과 개방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정부관계자들은 낙관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한 동안 남북교류문제에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 이였으나 최근에는 「교류를 통한 북의 개방」 논리가 점차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북학 측도 이러한 우리의 의도를 잘 알고 있으며 인적교류가 몰고 올 위기감을 경계하고 있다.
전대협대표로 평양축전에 참석한 임수경양의 자유분방한 행동에 북한지도부가 충격을 받았다는 최근 외신보도는 북한체제가 남북교류로 얼마만큼 타격을 받게될 것인지 짐작할 수있게 한다.
북은 결국 중· 소의 개방요구 압력과 주민들의 개혁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분출구로 남북교류보다 회담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이 필요로 하는 「회담」과 남이 추구하는 「교류」가 서로 공통분모를 찾기까지는 상당기간이 지나야 할 것 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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