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뜬 '전국민 100만원' 재난기본소득···靑 "검토 안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브리핑하는 김경수 경남지사. [사진 경남도]

브리핑하는 김경수 경남지사. [사진 경남도]

“모든 국민에게, 100만원씩, 올 4~6월 사이 지급.”

김경수 경남지사가 8일 들고 나온 ‘재난기본소득’ 지급 방안의 골자다. 코로나19 발생 후 비슷한 주장이 몇 차례 나왔지만, 지급 범위와 금액·시기가 모두 파격적이라 관심이 쏠린다. 친문(親文·친문재인) 적통으로 꼽히는 현직 도지사의 작심 제안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김 지사는 자체 산출한 재원 규모와 함께 재정 보완책까지 제시했다.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면 약 51조원, 50만원을 지급하면 26조원이면 가능하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이 중 부자들에게 간 돈은 향후 증세를 통해 다시 회수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지원 대상자 선별에 시간과 행정 비용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고소득층은 내년도에 세금으로 다시 거궈들이는 방안이다”라면서다.

김 지사는 경제 전문가들을 인용해 “51조원을 재난기본소득으로 투자하면 경제 활성화를 통해 늘어나는 조세수입이 8조~9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은 코로나 확산 추세라면 수출 부진 우려 때문에 1인당 100만원으로 과감하게 가는 게 맞다”고 했다.

50만원? 100만원? 소상공인만?

이재웅 쏘카 대표가 재난기본소득 관련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이재웅 쏘카 대표가 재난기본소득 관련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김 지사 발언은 최근 각계각층에서 나온 재난기본소득 주장들의 집대성에 가깝다. 지난달 29일 이재웅 쏘카 대표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에 한 달 간 50만원 지급” 아이디어를 올린 뒤 정치권에서는 긴급 현금복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당장 추경안 용처 변경을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 피해가 큰 대구·경북(TK) 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인 그는 지난 6일 정부 추경안에 대해 “중소기업을 돕는 2조4000억원과 지역경제를 살리는 8000억원을 더하면 3조2000억원인데 차라리 그 돈이면 전국의 350만명 소상공인에게 월 1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에서도 기본소득에 일부 공감하는 발언이 나온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지난 2일 “한 기업인이 제안한 재난기본소득 정도의 과감성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며 이재웅 대표 제안에 호응했고,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1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는 8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일대가 한산하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는 8일 오후 대구시 중구 동성로 일대가 한산하다. [뉴스1]

앞서 기본소득제를 주장해 온 이재명 경기지사는 김 지사가 8일 기자회견을 하자마자 페이스북에 “전적 공감”, “응원” 등의 글로 공감을 표했다. 앞서 지난 6일에도 이 지사는 “일정 기간에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형태의 재난기본소득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등 내용이 포함된 코로나19 대책을 마련해 금명간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당·정·청 모두 “이번 추경엔 불가”

‘전국민·100만원·상반기 지급’ 주장이 실현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극히 낮다는 분석이 대부분이다. 김 지사가 “별도 입법 조치가 없더라도 예산 편성을 통해 지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했지만 수십조원 규모 예산안은 국회 동의를 거쳐야 집행할 수 있다. 당장 야당에서 “원칙도 모르는 주장”(이준석 통합당 최고위원)이란 비판이 나온다. 여야 각론 합의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9일 “필요하다면 상황 전개에 따라 추가적으로 대책을 말하겠다. 그런 차원에서 (재난기본소득) 제안에 대해 재정 당국에서 충분한 검토를 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재난기본소득 검토 가능성을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자 청와대는 “재난기본소득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제안이 나온 취지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알렸다. 검토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재난기본소득을 말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민생 상황에 주목하겠다”는 설명이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현안 브리핑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날부터 미래선거대책위원회 활동을 중단하고, 당 재난안전위원회를 확대한 코로나 국난극복위원회를 중심으로 당력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이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현안 브리핑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날부터 미래선거대책위원회 활동을 중단하고, 당 재난안전위원회를 확대한 코로나 국난극복위원회를 중심으로 당력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경안 신속 처리”(이해찬 대표)를 강조한 민주당에서도 비슷한 메시지가 나왔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본소득 논의로 이번 추경을 1~2주 미룰 수 없다”며 “추경의 급박함을 고려하면 당장 논의는 사실상 쉽지 않다. 이후에 공간을 열어 (재난기본소득) 논의를 지속하는 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5일 11조7000억원어치 코로나 추경안을 제출한 정부는 이미 “그런 (재난기본소득) 취지의 사업이 충분히 반영돼있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는 입장이다. 국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추경안에는 저소득층·노인·아동 등 취약계층 500만명에 6월까지 2조원 어치 ‘소비쿠폰’을 주는 방안이 담겼다. 138만 저소득 가구에 지역사랑상품권 월 최대 22만원(2인 가구 기준)을 주고, 아동수당 대상자 263만명에게 10만원을 지급하는 등 내용이다.

여야는 추경안을 10일 상임위에 상정해 11~12일 심사·의결한 뒤 17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