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간신히 물꼬 틀었는데···'만년 적자' 대일무역 또 악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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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일본과 경제 교류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먹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일본이 5일 한국발 방문자를 상대로 입국 규제 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간신히 대화 물꼬를 튼 상황에서 겹악재가 닥쳤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9일부터 한국에서 나리타(成田)ㆍ간사이(關西) 공항으로 들어오는 입국자에게 2주간 지정한 장소에서 대기하고 국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 5일 발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주재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입국 제한이 늘어나 인적 교류뿐만 아니라 교역 및 투자 등 경제활동에도 제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조치는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당장 수출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여파 속에서도 이어온 양국 간 인적 교류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강제징용 판결, 수출규제 문제 등으로 꽁꽁 얼어붙었다가 지난해 말 정상회담 등으로 겨우 대화의 물꼬를 튼 한일 관계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화할 경우 경제 타격이 불가피하다. 현지 주재원이 있거나 화상회의 시스템을 잘 갖춘 대기업은 그나마 영향이 적다. 인프라가 부족한 중소기업이 더 난감하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수출을 진행하려면 최종샘플 시연, 인허가 취득같이 현지에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현재 거래를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지만 새로운 거래처를 뚫거나 설명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에 발이 묶였다”고 털어놨다.

인적 교류를 제한할 경우 더 아쉬운 건 한국이다. 한일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부터 지난해까지 55년 동안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총 6237억 달러(약 742조원)에 달한다. 그동안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 1위 국가도 일본(191억6300만 달러ㆍ약 22조8000억원)이다. 2~4위가 사우디ㆍ카타르ㆍ이란 같은 산유국이란 점을 고려하면 일본이 ‘대체 불가능한’ 무역국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일본과 교역에서 적자가 큰 데는 기술력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산업의 몸집을 키워왔지만, 소재ㆍ부품 기술력은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 장시간 축적한 기술력이 있어야 하는 제품으로, 일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가뜩이나 지난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국가(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반도체 핵심 소재 등 일본으로부터 전략 물자 수입이 빡빡해졌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소재ㆍ부품을 수입해 중간재로 가공한 뒤 중국에서 최종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며 “입국 제한 조치가 장기화할 경우 수출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도 경제 타격을 우려하고 나섰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번 조치가 중국ㆍ한국 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대폭 제한해 감염 확산을 줄이려는 목적이지만 왕래 제약이 폭넓다”며 “경제 등에 큰 혼란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지난해 일본에 입국한 외국인 중 중국인이 742만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인은 534만명으로 두 번째”라면서도 “경제 활동이나 관광업의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국내 감염 확대를 우선했다”고 분석했다.

한·일 통상당국은 10일 서울에서 제8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7차 정책 대화를 연지 약 3개월 만이다. 지난해 대화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한국 정부는 이번 대화를 기다려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라 일본이 10일 대화를 연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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