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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로 확보한 명단 공유하면 불법" 檢내 신천지 수사 회의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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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19일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달 19일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를 고민 중인 검찰 관계자가 말했다. "압수수색으로 신천지 교인명단을 확보해도 이를 방역 당국에 제출하면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신천지 명단은 수사와 재판에만 사용할 수 있어 제약이 크다"는 형사소송법상 원칙도 언급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여권 정치인들은 "신천지가 정부에 거짓 명단을 제출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수사 요구를 하고 있다. 추 장관은 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수사기밀에 가까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신천지 강제수사 요청'까지 공개하며 검찰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런 빗발치는 요구에도 검사들은 신천지 수사에 회의적이다.

실익도 없고, 별건 수사도 싫다 

검찰 내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관련 명단 확보를 위한 수사라면 법적 논란으로 방역 당국과 공유가 어려워 실익이 없고, 신천지 총회장인 이만희(88) 개인에 대한 수사라면 별건 수사에 가깝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한 현직 검사장은 "방역의 판을 깨며 신천지에 대한 마녀사냥식 수사를 하란 말이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중대본)가 5일 대검 포렌식팀 협조하에 신천지 본부 행정조사로 명단확보에 나서며 강제수사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추 장관이 너무 앞서나갔다는 것이다.

5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소재 신천지예수교회 본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행정조사를 마친 정부 조사단이 서류를 들고 나서고 있다. [뉴스1]

5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소재 신천지예수교회 본부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행정조사를 마친 정부 조사단이 서류를 들고 나서고 있다. [뉴스1]

수사로 확보한 명단은 공유하기 어려워

검찰이 신천지 수사에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실효성이다. 검찰은 신천지의 범죄혐의 소명과는 별개로, 설령 압수수색을 통해 신천지 교인 명단을 확보해도 현행법률상 이를 방역 당국과 공유하긴 어려울 것이라 보고 있다. 수사로 확보한 자료는 그 범죄 혐의와 관련한 재판에서만 사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형사사건의 증거물을 다른 기관과 공유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 말했다. 당장 해당 검사에게 공무상 기밀누설과 피의사실 공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이 적용될 수 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검찰이 정치인 수사를 하다가 정당 내부 자료를 확보해도 이를 청와대에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 설명했다. 그래서 대검은 "중대본의 행정조사를 통한 신천지 명단 확보가 가장 실효적 조치"란 입장이다.

4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명단 확보를 위한 수사는 불법  

일각에선 '감염병의예방및관리에관한법률(감염병예방법)' 제76조 2를 근거로 보건당국이 검찰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당 조항엔 방역 당국이 "감염병 환자와 의심자에 대한 개인정보를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 등에 요청할 수 있다"고 나와있다. 보건당국은 이 조항을 근거로 현재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감염자 및 의심환자의 개인정보를 받고 있다.

하지만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럴 경우 검찰 수사가 신천지 명단을 제공하기 위한 행정 목적상의 수사가 돼버린다"며 "수사 자체가 불법성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신천지 교인 전체를 감염병 의심자로 보기도 어렵고, 검찰이 수사로 확보한 증거를 수사 외의 목적으로 행정기관에 제공한 전례를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추 장관의 강제수사 지시로 신천지가 고발 혐의와 관련한 증거도 이미 상당 부분 폐기했을 것이라 보고있다. 추 장관의 공개적인 지시가 신천지에 '수사를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줬다는 것이다. 특수수사를 전담했던 한 전직 검사장은 "피의사실 공표보다 무서운 것이 수사상황 공표"라며 "추 장관의 지시 뒤 이미 신천지에서 (증거를) 싹 치웠을 것"이라 말했다.

지난 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만희 총회장이 신천지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만희 총회장이 신천지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개지시로 압수수색 밀행성도 깨져  

이는 물론 신천지의 범죄 혐의가 소명된다는 전제하에 성립하는 주장이다. 검찰은 "신천지가 행정당국에 고의로 거짓 자료를 제출한 혐의는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 보고있다. 또 다른 현직 검사장은 "신천지 수사 과정에서 검찰청 내 코로나19 확진자라도 나온다면 다른 모든 검찰 수사가 중단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신천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여권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책임을 검찰 수사로 돌릴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신천지 수사에 돌입했다 실패할 경우, 코로나19 사태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천지 수사에 긍정적 입장이던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추 장관이 정말 수사를 원했다면 검찰과 조용히 협의했으면 될 일이다. 검찰이 이런 식의 정치공세에 휘말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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