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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 60세 간호사까지…대구의 부름에 달려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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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구시 북구의 국가감염병전담병원인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150명이 격리돼 있다. 의사 31명과 간호사 121명 등 의료진 160명가량이 환자를 돌본다. 퇴직을 앞두고 안식년을 보내던 김미래(60·칠곡 경북대병원) 간호사는 남편의 지지에 용기를 내 코로나19 전선에 자원했다. 지난달 29일 51병동에 배치됐다. 예순의 베테랑, 최고령 김 간호사가 사투 이틀째 현장 소식을 보내왔다. 김 간호사처럼 코로나 전쟁에 기꺼이 뛰어든 20~30대 의료진도 있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으로 파견간 박지원(27·칠곡 경북대병원) 간호사와 이정현(36대구 남구 의원) 임상병리사도 편지를 보내왔다.

대구병원 자원봉사 김미래씨 편지 #35년 만에 퇴직 전 얻은 휴식 포기 #방호복·고글 무장하고 2시간 근무 #얼굴 짓누르는 압박에 불편·답답 #지하철 화재 이긴 대구, 또 이길 것 #동산병원 간 27세 박지원 간호사 #“고맙다는 환자들 말에 몇번 울컥” #36세 이정현 채혈 담당 병리사 #“신종플루 때 경험해 다시 자원”

#60세 김미래 간호사

지난달 29일 대구병원 에서 방호복 등을 착용한 김미래 간호사. [사진 김미래]

지난달 29일 대구병원 에서 방호복 등을 착용한 김미래 간호사. [사진 김미래]

대구시는 적막강산이다. 베란다로 내다보는 도심은 사람이 살지 않는 영화 세트장 같다. 서로를 경계하며 믿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더 두렵다.

35년 넘게 근무하고 이제 겨우 안식년을 갖게 됐는데 공포의 도가니로 걸어 간다고 불안해하던 큰딸, 엄마 나이를 걱정하던 둘째 딸, 다른 엄마라면 훌륭하다고 했겠지만 우리 엄마라서 두렵다는 아들까지…. 결국 이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지지해 줘 고마운 마음이다. 이 난관을 헤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동참하리라는 굳은 의지로 마스크·방호복·보호경으로 무장한 채 근무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얼굴을 짓누르는 듯 또 찌르는 듯한 불편함과 답답함이 몰려왔다.

두 시간 근무하고 마스크·방호복·보호경을 탈의한 뒤 두 시간의 휴식을 갖고 다시 모든 보호구를 착용하고 교대한다. 방호복은 아무리 입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어떤 간호사는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중간에 나간다. 두통과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하는 간호사도 있다. 새로운 환자가 올 때 내 부주의로 내가 감염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게 될까 봐 무척 긴장했다. 시간이 지나니 그런 두려움보다 보호구 착용의 압박이 밀려왔고, 자꾸 시계를 보게 됐다.

그러나 소명을 띤 직업인이고 굳은 의지와 원칙을 준수한다면 무사히 소임을 다하리라고 오늘도 다짐한다.

내가 근무하는 병동에는 52명의 환자가 있다. 대부분 경증인 젊은 환자다.

“고글 땀 차 바늘 꽂기도 힘들어” 

5명이 한 조가 돼 환자들의 식사와 약을 챙긴다. 체온·맥박·호흡·혈압 등 활력 징후도 확인한다. 숨이 차 환자들과 긴 대화는 못 하지만 표정에서 착잡한 마음이 읽힌다. 폐를 끼친다는 생각을 하는지 환자들이 간호사에게 호의적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대구시 중심에 위치한 나의 근무처는 상인동 가스폭발(1995년), 지하철 화재(2003년) 등 참사의 최일선에 있었다. 여러 의인이 살신성인 정신으로 생명을 구하고 많은 시민이 헌혈에 동참했다.

대구 시민들은 하나가 되기 위해 끝없이 발길질하며 헤엄쳐 왔고, 단합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도 반드시 이기리라 본다. 전국에서 파견된 나이팅게일들도 소임을 다할 것이다. 밟을수록 살아나는 잡초처럼 강한 다리로 밟혀도 또다시 뻗어갈 것이다.

#27세 박지원 간호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파견을 자원해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분투 중인 칠곡 경북대병원 소속 박지원(27) 간호사. [사진 박지원]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파견을 자원해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분투 중인 칠곡 경북대병원 소속 박지원(27) 간호사. [사진 박지원]

코로나 지정 병원 첫 파견 근무를 했다. 정확히 내 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출근 전날 많이 무섭고 떨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1시간밖에 잠을 못 잤다.

생애 첫 방역복을 입은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보안경까지 습기가 차서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도 종종 있었다. 어지러웠지만 잠깐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괜찮아지길 기다렸다.

간호사들끼리 초면이었지만 같은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기에 금방 이야기하고 서로 힘이 됐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꺼이 자원봉사하는 사람들 등 정말 많은 분이 오셔서 도움을 주는 모습에 오늘 몇 번이나 울컥했다.

박지원 간호사의 편지.

박지원 간호사의 편지.

생각보다 대부분의 환자는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1인실에 있으면 하루종일 말을 나눌 상대가 없기 때문에 한 번씩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먼저 말을 건네고, 힘내자고 얘기했다. 그럴 때마다 다들 웃으며 고맙다고 해서 뿌듯했다. 모두를 위해서라도 힘내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더 이상의 확진자들이 생기지 않기를, 환자님들 빨리 완치하길, 우리나라 금방 극복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36세 이정현 임상병리사.

대구 남구 의원 소속 이정현(36) 임상병리사. [사진 이정현]

대구 남구 의원 소속 이정현(36) 임상병리사. [사진 이정현]

모든 것이 마비돼 가는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던 중 의료인 봉사자를 급하게 구한다는 소식을 보고 지원했다. 2009년 신종플루 때 동산병원에서 환자 채혈을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원했고, 바로 다음 날 투입됐다. 레벨 D 방호복을 착용하고 들어가야 했는데, 두 시간을 꽉 채워 근무하게 되면 속옷은 물론 양말까지도 땀에 다 젖어서 나오게 된다.

내가 맡은 채혈 업무는 환자와 가장 근접하게 접촉하는 일이다. 고글과 장갑을 두 장씩 끼고 채혈한다는 게 쉽지 않다. 고글에 습기가 끼면 보이지 않아 바늘 꽂는 것도 힘들다. 환자가 기침이라도 하면 긴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업무를 마치면 모든 장비를  벗을 때까지 도와주고 마지막 소독까지 봐주는 사람이 있어 감염 위험이 크지 않아 보인다.

대구에 온 모든 의료인, 두려움에도 지원한 후배들,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한마음으로 이겨내고 있는 대구 시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정리=황수연·이우림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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