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내 임대주택 건설 첫 제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풀어 국민임대주택을 지으려던 정부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건설교통부는 서울 강남구 세곡동(세곡2지구)과 강동구 상일.하일동(강일3지구) 일대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7500가구의 국민임대아파트를 짓는 계획에 대해 중앙도시계획위원회(중도위)가 최근 개발 부적합 결정을 내렸다고 31일 밝혔다. 정부가 2002년부터 추진한 그린벨트 내 국민임대주택 건설계획에 대해 중도위가 부적합 판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건교부는 세곡2지구와 강일3지구를 대체할 곳을 새로 찾기로 했다.

중도위의 이번 결정에 따라 앞으로 '환경보전'과 '개발'의 우선 순위를 둘러싼 그린벨트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 등 18곳의 그린벨트를 풀어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계획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그러나 그린벨트가 포함된 송파신도시 건설계획은 이미 중도위에서 도시계획변경을 승인받았기 때문에 이번 결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 "그린벨트 해제는 꼭 필요할 때만"=건교부는 중도위의 이번 결정을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도위가 그동안 49곳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임대주택단지를 짓겠다는 건교부 계획을 승인했었기 때문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세곡2지구에 대해 위원들의 의견이 다소 엇갈릴 것으론 생각했지만 개발 불가 결정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건교부와 중도위 모두 중도위의 기본 입장이 바뀐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번 결정은 도시와 도시 사이에 자리 잡은 세곡2지구와 강일3지구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세곡2지구는 서울 강남구와 성남시 사이에, 강일3지구는 강동구와 하남시 사이에 자리 잡은 녹지축인데, 이곳들이 개발되면 이 지역 도시 녹지축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개발 불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교부 방침을 뒤집은 이번 결정의 의미나 파급 효과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중도위의 민간위원 A씨(교수)는 "많은 민간위원들이 확실한 개발 효과 없이는 그린벨트를 쉽게 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 다른 국책사업에 불똥 튈까=중도위는 그린벨트 해제 여부뿐만 아니라 택지지구 지정, 삼림.토사 채취 등의 심의 권한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환경보전'에 힘을 실은 이번 결정의 기준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경우 상당수 국책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도위의 B위원은 "중도위가 개발보다 환경보전을 더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환경보전은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을 앞으로도 적용할 것으로 본다"며 "그린벨트 개발과 관련된 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도시 등 규모가 큰 택지지구 조성사업은 그린벨트를 포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결정의 영향을 받게 될 전망이다.

김준현.김준술 기자

◆ 중앙도시계획위원회=국토계획법에 따라 만들어진 심의기구로 도시기본계획, 대규모 사업지구지정 등을 심의한다. 현재 민간위원 25명과 건교부.국방부.농림부.환경부 등 정부위원 4명(1급) 등 29명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장은 김원 전 서울시립대 교수이며, 민간위원 중 21명이 대학 교수다. 중도위 회의는 매주 한 차례씩 열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