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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증권의 TRS 딜레마…대출 회수하면 고객은 100% 손실 난다

중앙일보

입력

KB증권 본사 전경 [KB증권]

KB증권 본사 전경 [KB증권]

KB증권이 총수익스와프(TRS) 딜레마에 빠졌다. KB증권이 판매한 라임펀드 '라임AI스타 1.5Y' 시리즈가 100% 손실 구간에 들어가면서다. 이 펀드의 전액 손실을 초래한 원인이 된 TRS 계약은 전부 KB증권이 제공했다. KB증권으로선 TRS 대출금을 계약대로 회수하자니 고객이 투자금을 모두 날리게 생겼고, 고객 손실률을 최소화하자니 회사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실정이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이 판매한 'AI스타 1.5Y(이하 AI스타)' 세 펀드(1호~3호)는 현재 손실률 100% 구간에 접어들었다. AI스타는 라임자산운용이 지난해 9월말 대비 -49% 수익률을 적용해 기준가를 조정한 '플루토 FI D-1호' 펀드를 주로 편입했다. KB증권이 유일하게 판매한 라임펀드로, 전액 KB증권 창구를 통해 판매됐다. 금감원이 밝힌 KB증권을 통한 라임펀드 투자금액은 681억원(지난해 말 기준)이다.

AI스타, TRS 때문에 손실률 100% 

모펀드 손실률이 49%인데 자펀드인 AI스타의 손실률이 100%가 된 건 TRS 계약 때문이다. TRS는 증권사가 자산운용사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고 주식, 채권, 메자닌(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자산운용사 대신 매입해주는 계약을 말한다. 투자 자산의 명의자는 증권사지만 투자 손익은 운용사의 몫이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선 TRS를 활용할 경우 레버리지(차입) 효과를 볼 수 있다. 자산운용사가 증권사와 담보비율이 50%인 TRS 계약을 맺었다면, 자기 돈은 5억원만 투자하고도 10억원어치 자산을 매입해 투자 수익률을 두배(레버리지 100%)로 끌어올리는 식이다.

라임자산운용이 지난 14일 발표한 자펀드 손실률 규모. KB증권이 전액 판매한 'AI스타' 시리즈는 전액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라임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이 지난 14일 발표한 자펀드 손실률 규모. KB증권이 전액 판매한 'AI스타' 시리즈는 전액 손실구간에 진입했다. [라임자산운용]

문제는 펀드에서 큰 손실이 발생할 경우다. 채권자의 입장인 TRS 증권사는 계약상 선순위로 자산을 회수할 수 있다. 펀드의 기준가격이 크게 떨어질 경우, TRS 증권사가 먼저 대출금을 전액 회수해간다면 남은 투자자들의 손실률은 TRS 계약의 담보비율에 따라 몇배로 불어난다.

AI스타가 바로 이런 경우에 처했다. 라임운용은 지난 14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 펀드(AI스타)들의 기준가격 하락이 크게 나타난 이유는 TRS를 사용한 레버리지 비율이 100%였기 때문"이라며 "증거금보다 편입자산의 가치가 더 하락해 현재로서는 고객의 납입자금이 전액 손실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약 이행" vs "손실 보전" 엇갈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KB증권 WM총괄본부의 판매전략에 따라 KB증권 창구에서 고객들에게 판매한 AI스타의 TRS 계약 상대방이 다름아닌 KB증권 델타원솔루션본부라서다.

AI스타의 기준가격은 이미 TRS 계약의 담보금 수준(절반)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KB증권은 만기 때 TRS 계약에 따라 선순위로 자산을 회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곧 펀드에 투자한 자기 고객들의 손실률을 두배(레버리지 100%)로 키우는 꼴이 된다. KB증권이 직면한 이른바 TRS 딜레마다.

KB증권이 판매한 라임펀드는 지난해 말 기준 총 127계좌, 681억원으로 알려졌다. KB증권은 이 금액이 전부 ''AI스타 1.5Y' 1호~3호 판매분이라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KB증권이 판매한 라임펀드는 지난해 말 기준 총 127계좌, 681억원으로 알려졌다. KB증권은 이 금액이 전부 ''AI스타 1.5Y' 1호~3호 판매분이라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KB증권 내부에선 TRS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델타원솔루션본부와 고객의 손실분을 보전해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WM총괄본부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내부 사정에 밝은 한 KB증권 고위 관계자는 "통상 이런 경우에 각 부서는 자기 부서만의 입장을 피력할 수밖에 없다"며 "이 문제의 해결방법은 사장이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사회까지 올려서 결정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KB증권 선택, 다른 TRS 증권사엔 부담 

TRS 딜레마에 빠진 KB증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라임사태에 얽힌 나머지 TRS 증권사들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제의 라임펀드 전체적으로는 KB증권(1000억원)을 비롯해 신한금융투자(5000억원)와 한국투자증권(700억원) 등이 TRS로 돈을 댔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라임펀드 투자자들의 손실률을 줄이기 위해 TRS 증권사들이 계약상 권리를 일부 양보해줄 것을 요청해오고 있다. 하지만 TRS 증권사들은 대출 원금을 회수하지 않는 것이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이를 거부해왔다. 대신 계약 변경을 통해 연 10% 수준으로 추정되는 지연이자를 부과하지 않는 식으로 협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KB증권이 고객 손실 보전을 위해 TRS 계약상 권리를 포기하고 대출원금까지 일부 양보한다면, 이는 다른 TRS 증권사들에도 대승적 차원의 결단을 촉구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

한 TRS 증권사 관계자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KB증권이 만약 자기 고객들의 손실률을 줄이겠다는 이유로 TRS 계약을 회수하지 않기로 한다면 그걸 빌미로 다른 증권사에 부담스런 요구가 들어올 수 있다"면서도 "아직 어떤 요구안이 들어온 상황은 아니어서 섣불리 얘기할 순 없다"며 말을 아꼈다.

투자자들 소송 집중 가능성  

이 경우 라임펀드의 사기성을 주장하는 투자자들의 소송이 KB증권에 집중될 가능성도 있다. KB증권이 사실상 펀드의 운용와 판매 모두의 '몸통'으로 지목될 수 있어서다.

라임펀드 투자자들을 대리해 각종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의 구현주 변호사는 "TRS 계약을 실무적으로 보면 투자계약 대상 물색, 최초 투자, 운용 대상 변경, 구조화 등 자산운용사가 해야 하는 일을 TRS 증권사가 대신 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동안은 판매와 운용의 책임이 분리돼있어 투자자들이 소송을 할 때 각각의 책임을 판매사와 운용사에 따로 물어야 했지만, 이 경우 투자자들은 증권사에 판매와 운용 책임을 동시에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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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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