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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 주창자, 타다 질문에 “형사법으로 시장 규제, 기이”

중앙일보

입력

위법성 논란에 빠진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에 대한 법원의 1차 판단이 6일 앞으로 다가왔다. 서비스 개시 16개월 만이다. 지난해 10월 여객운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타다' 경영진이 19일 유죄 선고를 받을 경우 서비스를 접어야할 수도 있다. 법원이 타다를 '유사 콜택시'로 볼지 '혁신 서비스'로 판단할지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공유경제' 개념을 처음 소개했던 로렌스 레식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12일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서 형사법을 활용하는 것은 굉장히 기이하다"며 "신산업, 혁신을 계속 억누를수록 한국 경제는 점점 더 둔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런 정부가 육성하는 스타트업이 혁신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유선통신 회사들이 반대했다면 인터넷이 나올 수 있었을까? 케이블 방송들이 반대했다면 유튜브가 나올 수 있었을까?"라고 되물었다. 12일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다.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서 형사법을 활용하는 것은 굉장히 기이하다"며 "신산업, 혁신을 계속 억누를수록 한국 경제는 점점 더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 하버드대]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서 형사법을 활용하는 것은 굉장히 기이하다"며 "신산업, 혁신을 계속 억누를수록 한국 경제는 점점 더 둔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 하버드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레식 교수는 2008년 '공유 경제'(sharing economy)라는 개념을 처음 주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당시 그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공유 경제를 언급했다. 그가 정의하는 공유 경제란 "한 번 생산된 제품을 여러 명이 공유, 협업하는 경제 방식" 인데, 자동차나 집에 남는 방, 책 등을 여러 사람이 나눠씀으로써 상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에어비앤비,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 기업이 잇따라 생기면서 공유 경제는 학자의 책상에서 비즈니스로 구현됐다. 시카고대·스탠퍼드대를 거친 그는 현재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헌법을 가르치고 있다.

레식 교수에게 한국 타다의 상황을 전하자, 레식 교수는 "택시 업계를 보호하는 것은 소비자와 혁신가들에게 엄청난 비용을 전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단순히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레식 교수는 "혁신가들은 이제 기존 산업에 도전해봤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상품이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 때문이다. 이는 혁신을 억누를 것이고, 한국 경제를 점점 더 둔화시킬 것이다"고 지적했다.

2018년 10월 출시된 '타다'는 렌터카 용도인 11~15인승 승합차를 승객에게 호출해주는 서비스다. 현재 회원 170만명, 차량 1500대로 서울·경기 지역에서 운행 중이다. 그러나 택시업계는 '타다'가 기존 택시 시장을 침범하고 '타다' 운전자의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반대해왔다. 검찰이 '타다'를 기소한 지난해 10월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타다' 운행을 사실상 금지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두 달 뒤 상임위를 통과했다. 창업자는 형사재판에 기소된 데다, '타다금지법'까지 나오자 서비스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왼쪽)와 타다 운영사 VCNC의 박재욱 대표. [연합뉴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웅 쏘카 대표(왼쪽)와 타다 운영사 VCNC의 박재욱 대표. [연합뉴스]

재판에 넘겨진 이재웅 쏘카 대표는 지난 10일 열린 1심 결심 공판에서 레식 교수와 비슷한 취지의 최후 변론을 했다. 포털 '다음'의 창업자인 이 대표는 "제가 다시 (쏘카와 타다를)창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자동차 2000만대를 소유해서 생기는 환경·경제적 비효율을 공유 인프라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며 "법에 정해진 대로 사업해도 법정에 서야 한다면 아무도 혁신을 꿈꾸거나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대표와 '타다'를 운영하는 박재욱 VCNC 대표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이들의 회사법인에는 각각 벌금 2000만원을 구형했다.

기존 산업과 신산업이 타협할 적정선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레식 교수에게 물었다. 레식 교수는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솔루션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새로운 서비스는 언제나 기존 서비스를 대체하는 것이고, 기존 사업자들은 이런 상황을 늘 불만족스러워한다. '경쟁 시장에서 신산업과 구산업 중 어느 것이 더 선호될까'하는 질문은 정치경제학에서 가장 고리타분한 질문일 것이다."

레식 교수는 "기술의 전환이 일어났을 때 정부가 그 부작용을 완화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특히 택시 기사처럼 이제껏 한 분야에서만 일한 사람들이 보호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곧 신산업을 규제하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그는 "기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새로운 산업의 두 다리를 묶어버리는(hobble)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원 판결 앞둔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법원 판결 앞둔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레식 교수는 16세기 초 니콜로 마키아밸리가 쓴 『군주론』을 인용했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기존 제도에서 번영하던 사람들은 강력한 적(敵)이 되는 반면, 새로운 질서로 혜택을 누릴 이들은 개혁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개혁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이 있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신뢰하지 않는다."

'타다' 경영진을 기소한 검찰은 "'타다' 운전기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레식 교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임시·계약직 중심 경제)' 기업이 전통 기업처럼 사회 안전망을 보장해주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지만, 이 안전망은 기업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마련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아닌 정부·사회적 차원에서 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한 해법이라는 뜻이다.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는 출시 16개월만에 형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진 타다]

승차공유 서비스 '타다'는 출시 16개월만에 형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진 타다]

레식 교수는 또 신산업을 규제하면서 동시에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펼치는 것은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이란 존재할 수 없다"며 "정부가 형사 재판과 같은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기존 산업을 방어하면서 스타트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비판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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