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이 유혈극 유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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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소련 붕괴 이후 보혁갈등의 정점이자 마침표였던 1993년 10월 4일의 '러시아 의회 반란'이 옐친의 각본에 따른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10년 전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사진)은 '강력한 대통령'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만들어 의회에 통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의회 보수파들은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부통령을 새 지도자로 추대하면서 농성에 들어갔다. 10일간 농성을 벌이던 반란파들은 오스탄키노 TV 방송센터도 장악했다.

다음날 옐친은 탱크부대에 진압을 명령했고 농성은 1백23명이 사망하는 참극으로 끝났다. 서방세계는 이를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의 불가피한 희생'으로 간주, 유혈 진압을 지지했다.

그러나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3일 "10주년을 맞아 당시 사건 담당자였던 레오니트 프로슈킨 검사 등 관계자들은 이 사태가 옐친이 기획한 유혈 사태임을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로슈킨이 제기하는 의문은 유혈사태의 직접 원인이 된 방송센터를 점령하는 과정으로 모아진다. 우선 소총 20정과 유탄발사기 1정으로 무장한 반란진영 행동대원들이 6대의 장갑차와 4백50명 중무장 병력이 지키는 방송국을 점령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또 옐친의 수비대가 반란세력을 방송센터로 호위했다는 점도 '기획된 함정'에 반란진영이 빠졌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증거로 꼽았다.

프로슈킨은 "유혈사태를 만들기 위해 모종의 세력이 중앙 통제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당시 작전에 동원됐던 한 탱크병은 "의사당이 체첸 반군의 공격을 받아 경찰관들이 가로등에 교수형당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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