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영화 '씬 시티'의 원작만화 빛과 어둠 속에 담아낸 도시의 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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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씬 시티 1, 2

프랭크 밀러 지음, 김지선 옮김
각 208쪽212쪽, 각 9000원

미국 만화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프랭크 밀러의 대표작이자 1990년대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정교한 그림 속에 작가의 심층적 주제의식을 녹여내는 만화의 한 형식)의 전성기를 연 작품이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씬 시티'의 원작 만화. 발표된 지 15년 만에 국내 번역되는 것이니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든 반갑다. 전 7권 중 1, 2권이 먼저 나왔고 올해 안으로 완간된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됐던 유럽산 그래픽 노블은 예술적 지향이 워낙 강했다. 이 책은 아주 다르다. 살인과 과도한 폭력, 심지어 식인(食人)등으로 유혈이 낭자한 이 작품은 타란티노 영화의 만화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타란티노의 별명을 밀러에게 붙여줘도 큰 무리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타란티노의 영화가 주는 특유의 즐거움이 있었듯 '씬 시티'에도 폭력과 악취미의 먼지 더미 속을 헤치고 나오는 무언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책을 붙드는 순간 빠져들 수밖에 없는 씬 시티(Sin City)라는 공간의 매혹이다. 높은 범죄율과 부패한 경찰, 타락한 공무원으로 어지러운 '죄악의 도시'는 잔뜩 꼬인 플롯, 수많은 등장인물과 더불어 작품을 움직이는 강력한 축이 된다. 여기에 레이먼드 챈들러와 대쉴 해미트의 소설에서 익숙한 하드보일드적 설정이 가세한다. 말보다는 주먹과 총을 앞세우는 거칠디 거친 남자들, 목숨을 걸 만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대개 창녀나 스트립 댄서다), 그들 사이에 울려 퍼지는 폭력과 순정의 이중주, 선과 악의 혼재, 그 진흙탕을 휘젓고 다니는 영웅과 반영웅들…. 1권 '하드 굿바이'에서는 하룻밤을 지낸 천사 같은 여인 골디의 원수를 갚기 위해 씬 시티의 난공불락의 권력자 로크 가문과 맞서는 마브가, 2권 '목숨을 걸 만한 여자'에서는 배신한 옛 여인의 남편을 속임수에 넘어가 죽이게 된 남자 드와이트가 등장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흑과 백, 명과 암, 빛과 어둠 등 이분법으로 승부하는 밀러의 그림이다. '하드 굿바이'에서 비를 맞는 마브의 독백 장면은 빛과 어둠의 미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백미. 로드리게즈 감독은 '씬 시티'를 만들면서 밀러의 원작을 복사라도 하듯 100% 그대로 옮겼다(만화를 가져다 스토리보드로 썼다고 한다). 원작을 보면 왜 창작자로서 다른 장르를 '모방'하는 극단적 방법을 택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풀린다. 원작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려는 의도는 물론, 더이상 나은 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전략적 선택이 작용했기 때문 아닐까. 19세 이상.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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