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소프트파워

살아있음은 축복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1년6개월 전 폐암 수술을 받았던 장모가 얼마 전부터 구토와 어지럼 증세를 보여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했더니 뇌에서 4.2㎝ 크기의 종양이 발견됐다. 암세포가 폐에서 뇌로 전이된 것으로 추정되는 그 종양이 뇌간을 압박해 하루빨리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도 나왔다. 결국 장모는 급히 뇌종양 제거수술을 했다. 그저께 밤의 일이었다.

장모는 이미 아버지.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나에게는 유일한 어머니다. 그런 장모를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에 중환자실에서 뵈었다. 곱게 화장한 얼굴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셨는데 그 사이로 눈물이 괴어 있었다. 고희(古稀), 즉 일흔 살 연세에 두개골을 열고 뇌종양 제거수술을 받기 위해 들어가는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장모, 아니 어머니는 삶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갖고 계셨다. 세 시간 정도가 지난 뒤 예상보다 빨리 수술이 끝났다. 뭔가 좋은 조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술을 끝내고 나온 담당 의사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았다. 난관이 있었다는 암시였다. 예상과는 달리 종양이 막에 들러붙어 쉽게 뜯어지지가 않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담당 의사는 종양의 10% 정도는 남겨놓은 채 수술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말해 줬다. 차라리 고마웠다. 곧장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했다. 사진으로 본 수술 후 뇌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담당 의사는 앞으로 며칠이 고비라고 했다. 지켜보는 사람도 안타깝지만 생명에의 고투를 벌이는 어머니가 더 안쓰러웠다.

언젠가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암도 경력이라고. 그녀 역시 암 투병 경험이 있다. 그녀가 말하길, 사람들은 암환자라면 이미 생명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희미한 눈에 바싹 마른 몸으로 조용히 누워 있는 사람을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가능한 한 예쁜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병을 이기겠다는 의지로 빛나는 눈을 갖고 있다고 했다. 환자처럼 보이기 싫고, 살아 있다는 증거로 또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암투병을 하며 입원실에 하루만 누워 있어도 부자나 대학교수나 국회의원이나 정육점 아줌마나 결국 생명이라는 공동의 목적지를 향해 마치 풍랑 속에서 한 배를 탄 사람들처럼 결연한 동지의식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화제는 이전에 관심을 뒀던 것들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었는지, 누가 어떤 자리로 승진했는지, 정치권의 아무개는 왜 그런지, 누구 자식이 어느 대학에 갔는지 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들로 세상이 다시 그려진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살고자 몸부림치는 생명 앞에서 돈.권력.명예는 초라하고 무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생명의 고마움.소중함.위대함.감격스러움을 너무나 자주 잊고 산다. 잘 먹고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잘 싸고 잘 잘 수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지, 자기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위대한 일이며, 자기 두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 것인지 잊고 살기 일쑤다. 결국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경이요, 감격이요, 황홀이요, 축복이다. 장모, 아니 나의 어머니가 암과 싸우고 사경을 헤매며 내게 말없이 일깨워 준 게 바로 그것이다.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을 풍성하고 온전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할 바다. 그러니 살아있다는 이 경탄할 만한 축복 속에서 더 많이 느끼고 보듬고 감격하고 사랑하며 베풀자. 삶을 기쁘게 하고 생명을 뛰놀게 하자. 진정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축복이요, 축제이니까.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