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혔던 남북통로에 숨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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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한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방문이 4년 만에 다시 이루어지게 될 것 같다. 아직 속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16일 남북적 실무접촉에서 고향방문단(12월8일) 및 본 회담(12월15일) 개최날짜가 합의된 것은 제자리걸음을 하던 남북대화에 숨통을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합의는 이날 접촉에서 우리측이 그동안 고수해온 「선 적십자 본 회담개최 후 고향방문단 교환」주장을 양보, 고향방문단을 먼저 교환하자고 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러나 방문단 규모와 방문기간·방문지·예술단 공연내용과 TV생중계 등의 문제에는 전혀 의견접근을 보지 못해 남북 이산가족들이 재회의 기쁨을 꼭 누리리라는 기대는 아직은 성급한 「희망사항」이다. 그만큼 남북대화와 교류는 넘어야할 산도 높고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단 교환내용을 제쳐놓고 시기부터 합의한 것은 일단 목표를 정해놓고 목표에 맞춰 실질토의를 빨리 진행시키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때문에 엄격히 말해 이날의 합의는 회담재촉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지난 9월 27일과 10월 6일의 1, 2차 접촉에서 북한측은 계속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양 석방문제를 들고나와 정치적 선전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실질토의에는 들어가지 못했었다.
16일 접촉에서도 북측은 또다시 문·임 문제를 거론했으나 우리측이 유감을 표시하고 실질토의에 들어가자고 제의, 별다른 마찰은 없었다. 북측이 왜 이처럼 순순히 회담의 진전에 동의했는지는 복잡한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양측이 대화 및 교류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간주하는 문·임 문제를 뛰어넘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사태진전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남은 과제 중 가장 진통이 예상되는 것은 방문단 규모문제.
우리측은 지난 85년 1차 고향방문단 교환 때부터 적십자사의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 고향방문단에 중점을 두고 예술공연단은 부수적인 문제로 취급하자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번 1차 접촉에서도 우리측은 고향방문단 3백명, 예술단 50명을 제시하고 본격적인 예술단 교환문제는 별개의 남북문화교류회담 등을 열어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북한측은 고향방문단 3백 명, 예술단 3백 명으로 교환하자고 주장, 예술단을 우선시 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측은 예술단의 공연횟수도 85년의 2회에서 이번에는 4회로 늘리고 TV와 라디오로 공연실황을 생중계하자고 나서는 등 예술공연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북한이 예술단에 집착하는 것은 하시라도 동원할 수 있는 국가관리하의 공연단이 있고 그것이 남쪽사회에 주는 선전효과가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규모 고향방문단이 오는 것은 그들 사회에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어 기피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일시에 1급 연예인을 몇 백 명 모아 팀을 구성하는 것이 어렵고 「자유의 바람」을 가급적 이산가족을 통해 불어넣자는 속셈이다.
이런 사정으로 보아 12월 8일 2차 방문단 교환규모도 고향방문단 1백∼2백 명, 예술단 1백∼1백50명 내외로 합의될 가능성이 있다.
고향방문단의 방문대상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북측은 방문지를 평양과 서울로 국한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우리측은 각자 고향에 가서 성묘까지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방문지 문제는 북측이 주장하는 예술단의 지방공연제와 맞물려 방문지와 공연장소 모두 서울·평양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양측이 고향방문단 교환에 부분적이나마 합의한 배경에는 잇따른 접촉에서 전혀 진전이 없을 경우 여론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아무튼 북한측은 2O일 남북체육회담 개최에도 동의해 옴으로써 남북대화에 약간의 진전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전반적인 남북화해와 민간교류 실현으로 이어질지는 시간을 좀 더 두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

<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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