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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감산 돌입…실물경제 발열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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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 입구에 임시 휴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신종 코로나 15번째 확진자의 배우자가 이 백화점에서 근무한 협력사원으로 확인된 데 따른 조치다. [뉴시스]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 입구에 임시 휴점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신종 코로나 15번째 확진자의 배우자가 이 백화점에서 근무한 협력사원으로 확인된 데 따른 조치다. [뉴시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한국의 실물 경제에까지 전이 되고 있다. 내수·소비를 비롯해 관광·제조·수출 등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종코로나 산업 피해 현실화 #중국 공장 중단, 수출기업 직격탄 #영화 관람객 평소보다 30% 급감 #테마파크·스키장 개점휴업 상태 #외식·외출 줄이며 자영업자 타격

당장 국립공원·놀이공원 등 주요 관광지는 물론, 도심까지 인파가 줄면서 자영업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3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주말 영화관을 찾은 총 관객은 82만3685명이었다. 설 연휴던 전주 주말(272만8692명)보다는 70%가량 줄었고, 전전 주말(119만9344명)보다는 30%가량 감소한 규모다. 관객이 줄면서 오는 5일 개봉 예정이던 ‘더 프린세스: 도둑맞은 공주’는 개봉을 잠정 연기하기도 했다.

에버랜드·롯데월드 등 주요 테마파크 입장객은 지난해 이맘때보다 내장객이 20% 이상 줄었다. 키즈카페 등 어린이가 주 고객인 업종은 설 연휴 이후 ‘개점휴업’ 상태다. 스키장의 상황도 심각하다.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는 2월로 예정된 청소년 단체예약 전체가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고 밝혔다. 객실예약도 설 이후 잇따라 취소되면서 2월 전체 예약의 20%가 사라졌다. 같은 지역의 알펜시아리조트도 지난주 기준 2월 예약 230여건이 취소됐다고 전했다.

7~9일 예정된 전남 광주의 국가중요무형문화제 33호 ‘고싸움놀이’ 축제, 29일 예정된 국내 최대 삼일절 기념행사인 충남 천안의 ‘아우내 봉화축제’ 등도 연기 또는 취소되며 지역경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처럼 바깥 나들이나 외출을 삼가면 소비가 줄면서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기 마련이다. 주요 외식업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늘면서 매출이 줄었다” “동창회·동호회 모임 취소가 이어진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줄어든 주말 영화 관람객 수

줄어든 주말 영화 관람객 수

산업현장의 피해도 잇따를 조짐이다. 중국 내 공장 가동 중단에 따라 부품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생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차량 내 배선 뭉치 부품인 와이어링 하니스(Wiring Harness)의 재고가 오는 6일 오후 3시에 바닥난다. 와이어링 하니스는 중국에 공장을 둔 국내 부품 업체 3사에서 전량 들여오지만, 신종코로나 발생 이후 열흘 이상 공급이 끊겼다.

이날 기아차는 와이어링 부품 수급 차질 문제로 화성공장과 광주공장의 감산에 돌입했다. 하언태 현대차 국내생산 담당 사장은 이날 울산공장 직원을 대상으로 e메일을 보내 “중국에서 부품을 공급하는 일부 업체의 생산중단이 장기화하면서 (현대차도) 공장별·라인별 휴업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관리·조달 비용 때문에 부품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했지만, 돌발 변수로 인해 공장 가동을 세울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자동차 산업 구조 변화로 부품업체가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점도 위기를 극복하는 데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부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국 GDP 1% 떨어지면 한국 -0.35% 세계서 가장 큰 피해

중국 GDP 1% 떨어졌을 때 각국 GDP 영향. 그래픽=신재민 기자

중국 GDP 1% 떨어졌을 때 각국 GDP 영향. 그래픽=신재민 기자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95%는 중국이 현지에서 최종재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중간재와 자본재다. 현지 기업의 최종재 생산이 줄면 자연히 수출도 타격을 입는다. 한국의 수출은 지난해 1월까지 14개월 연속 뒷걸음질 친 가운데, 수출 반등을 자신했던 정부는 돌발 악재를 만나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이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수출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국내 대중 수출입 기업과 현지 진출 기업,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4000억원 규모의 무역금융을 지원하고, 물류·통관 등 수출 시 애로사항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중국인 ‘제한적 입국 금지’ 카드를 꺼내면서 관광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750만2623명. 이 중 34.4%인 602만명이 중국인 관광객이다. 업계에선 연간 중국인 관광객 규모가 최악의 경우 절반으로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인 관광객 1인이 국내에서 쓰는 비용 평균 1887달러를 중국인 입국자 규모로 환산하면 약 13조5000억원이다. 만약 중국인 관광객이 2017년 사드 보복 때처럼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6조7500억원이 증발한다.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0.35% 규모다. 국내 항공사들은 중국 노선의 절반 이상을 운항 중단하거나 감편하는 등 항공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글로벌 금융그룹 ING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사태에 따른 피해는 조사 대상인 24개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1% 떨어질 경우 한국 GDP는 0.35% 줄어든다. 2~4위는 홍콩·태국·말레이시아로 GDP에 미치는 영향은 0.3%가량이다. 반면 터키는 0.05%의 GDP 증감 효과를 본다. ‘유럽의 중국’으로 불리는 터키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생산 및 수출 기반 경제로 성장하고 있어, 세계 생산 시장에서 중국과 라이벌 관계로 꼽힌다. FT는 “역사상 최초로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주·장원석·배정원·허정원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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