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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다 번졌는데…” 후베이만 입국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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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요일인 2일 오후 정부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을 두 차례 발표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의 신종 코로나 대응 관계장관 회의 전후로다. 함께 배포됐던 보도 참고자료 수정도 두 차례 했다.

정세균, 신종코로나 대책 발표 #“후베이 방문한 외국인 입국금지 #내국인은 14일 동안 자가 격리” #자진신고 안하면 알 길 없어 한계 #주한 중국대사는 입국금지 반대 #“한국인 중국 방문 금지 예정” #검토로 수정 발표 뒷걸음질 #제주 무비자 입국은 일시 중단 #야당 “뒷북 대책, 더 적극 대응을”

1차 발표는 신종 코로나가 최초 발생한 후베이(湖北)성을 14일 이내에 방문하거나 체류한 모든 외국인은 4일 0시부터 한국 입국이 전면 금지된다는 내용이다.

오늘의 신종코로나 (2일 오후 11시 현재 )

오늘의 신종코로나 (2일 오후 11시 현재 )

해당 지역을 방문한 한국 국민은 14일간 자가 격리하고 제주특별법에 따른 무사증 입국 제도는 일시 중단되며 사업장이나 어린이집, 산후조리원 등 집단시설에 근무하는 이들이 중국을 다녀온 경우 14일간 업무에서 배제한다는 것도 포함됐다.

정 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회의 모두발언에서 “현재까지 중국에서만 1만4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전 세계 27개국으로 퍼지는 등 신종 코로나 확산에 대한 걱정이 매우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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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후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중국에서의 한국 입국을 위한 비자 발급도 제한해 관광 목적의 단기비자는 발급을 중단할 것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보도 참고자료엔 ▶(중국인 대상) 기존 관광 목적의 단기비자는 발급을 중단할 계획이며 ▶(한국인 대상) 중국 전역의 여행 경보를 현재 여행 자제 단계에서 철수 권고로 상향 발령하고, 관광 목적의 중국 방문도 금지될 예정이라고 명기됐다. 사실상 한국인이 관광 목적으로 중국에 입국하는 것이 금지되고, 중국인 역시 관광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됐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자료 배포 두 시간여 만에 중국인 대상의 단기비자에 대한 ‘발급 중단 계획’이 ‘발급을 중단하는 방법도 검토’로 수정됐다.

정부 “중국인 단기비자 발급 중단” 2시간 뒤 “중단 아닌 검토”

두 시간 뒤엔 중국에 대한 여행 경보가 ‘중국 전역’에서 ‘지역에 따라’로 발령되는 것으로, 또 한국인의 중국 방문 금지도 ‘예정’에서 ‘검토’로 고쳐졌다.

중국 현황

중국 현황

3일 전까지만 해도 정부·여당에선 부정적이던 대책들을 하루에 쏟아내 놓곤 곧 ‘뒷걸음질’ 친 것이다. 사실 청와대에선 지난달 28일 “세계보건기구(WHO) 결정이라든가, 관계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이 문제를 대처할 것”이라고 했고, 더불어민주당도 “넓은 시각으로 한·중의 미래도 내다봐야 한다”(이인영 원내대표)는 목소리가 대세였다. 중국인 입국 제한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로 시작된 반한 감정을 건드려 상황을 과거로 돌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다음달을 목표로 조율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6년 만의 방한 건도 걸려 있다.

지난달 30일 부임한 싱하이밍(邢海明) 신임 주한 중국대사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인 입국 금지’와 관련해 “중국과의 여행·교역 제한을 반대한다는 WHO 규정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주말을 기해 기류가 급변했다. 확진자가 4명이 추가돼 2일 오후 5시 기준 15명으로 늘었고, 일부 확진자가 10여 일간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을 활보한 사실이 드러나며 국민들의 공포감이 커졌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65만5000명 넘게 참여했다. “중국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졌고,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것으로 나왔다.

국제적으로도 조치가 이어졌다. 미국이 2일 오후 5시부터 2주간 중국을 다녀온 외국인의 입국을 잠정 금지키로 했다. 중국이 최대 교역국(2017년 기준 대중 수입 약 585억 달러, 수출 약 353억 달러)인 베트남도 지난달 30일부터 중국 전역에서 오는 여행객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일본이 2주간 후베이성에 체류한 적이 있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거부키로 한 게 지난달 31일이었다.

이번 조치를 두고 ‘뒷북’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한의사협회가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 금지 조치 등도 준비해야 한다”고 권고한 게 지난달 26일이었다.

후베이성을 거친 외국인만 입국 금지 대상으로 삼은 게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신종 코로나 진원지인 우한 인구가 1100만 명이고, 이미 500만 명 이상이 중국의 다른 지역과 해외로 빠져나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국 전역(31개 성·시·자치구)에서 환자가 발생한 상태다. 또 중국 당국이 후베이성 전역을 봉쇄한 게 지난달 24일부터였다. 그런데도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한국에 입국한 중국인이 1만1345명이었다. 항공편이 1만366명, 선박편이 979명이었다. 후베이성 지역에 머문 외국인들이 다른 도시나 국가를 거쳐 국내로 입국할 경우 자진신고 외에 이들을 걸러낼 방법이 없다는 점도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 ‘우한폐렴대책TF’ 회의에서 “이미 중국 전역으로 확산된 상황에서 부족하고 뒤늦은 대책 발표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3월에는 중국인 유학생이 대거 입국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중국인 입국 금지와 같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보다 강화된 방역대책을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한 뒤 야당을 향해 “정치적 목적의 비판은 정부 방역 역량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의료공조체계 구축을 방해하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초당적 협력을 촉구했다.

권호·이에스더·위문희 기자 gnomon@joongang.co.kr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과 관련, 본지 기사의 표기를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수정하고, 줄여 쓸 때는 ‘신종 코로나’로 하기로 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이 이같이 표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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