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님 가지 마세요"···진천 설득 나선 진영, 도망치기 바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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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인근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우한 교민' 수용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간담회 도중 항의를 받고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인근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우한 교민' 수용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간담회 도중 항의를 받고 행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장관님, 장관님. 이렇게 가시면 안 되잖아요.”
30일 오후 7시20분쯤 충북 혁신도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1층에서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회의장을 빠져나가자 그를 뒤따르던 한 여성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진 장관은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건물 밖에서 대기 중이던 승합차를 타고 곧바로 현장을 벗어났다.

진영 “불편드려 죄송하다. 2주만 참아달라” #주민들 “혁신도시 인구 밀집, 장소 바꿔달라” #진천지역 “지역이기주의 매도 안타깝다”

진 장관은 이날 오후 6시2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혁신도시 주민 20여 명과 진천·아산 격리 수용 시설의 선정 배경과 방역대책을 설명했다. 그러나 회의 막판에 남성 2명이 “우리도 주민인데 왜 회의에 못 들어가냐”며 경찰과 몸싸움을 했고, 간담회는 황급히 종료됐다. 회의장에선 “지금 가시면 안 됩니다”, “가지 마세요", “저희 얘기 좀 들어달라고요”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진 장관은 줄행랑치듯 회의장을 나갔다.

중국 우한 교민 179명이 격리 수용 예정인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주변에 거주하는 진천 주민들의 반발이 여전하다. 우한 교민 입국 하루를 앞두고 반발이 사그라지지 않자 진 장관은 이날 오후 충남 아산을 거쳐 진천을 들러 설득에 나섰다.

충북 진천군의 한 군민이 30일 오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열린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항의하고 있다. [뉴스1]

충북 진천군의 한 군민이 30일 오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열린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항의하고 있다. [뉴스1]

진 장관은 간담회에서 “애초 계획했던 인원보다 송환해야 할 교민 수가 많아져 어쩔 수 없이 생활관 규모가 큰 진천을 선택하게 됐다. 주민들이 걱정하는 부분을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혁신도시에 인구가 밀집해 있고, 어린아이를 둔 부모가 많다”며 수용 장소 변경을 요구했다. 진 장관은 “불편을 끼쳐 죄송하게 생각한다. 격리 기간인 2주 정도면 참아달라”고 주민을 달랬다.

앞서 이시종 충북지사는 이날 오후 1시쯤 인재개발원을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이 지사는 주민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진천·아산으로 결정한 격리 수용 장소를 번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아직 시간이 있다면 노력을 해보겠지만, 이미 너무 늦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중국 우한에서 진천으로 오는 교민은 공항에서 선별 검사를 거쳐 무증상자만 격리 수용 시설로 온다”며 “주민 안전에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면담 장소를 찾은 10여 명의 주민은 즉각 반발했다. “여기 사는 주민의 안전 대책은 전혀 없지 않으냐”, “도지사가 복지부와 똑같은 말을 할 거면 왜 왔냐”는 등 항의했다. 이들은 격리 수용자들 사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발생하면 후속 대책도 신통치 않을 거라며 불안해했다.

30일 오후 충북 진천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차장에서 한 주민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탄 차 앞에 누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오후 충북 진천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차장에서 한 주민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탄 차 앞에 누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재개발원이 위치한 충북혁신도시에는 약 2만6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격리 시설 전방 500m에는 210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 2곳이 있다. 윤재선(57) 우한 교민 수용 반대대책위원장은 “격리 시설에 수용된 우한 교민 중 단 한명이라도 폐렴이 발병하면 충북혁신도시 전체가 쑥대밭 된다”며 “2만6000명의 주민은 꼼짝없이 갇혀야 하는 거냐”고 따졌다. 주민들은 “해결도 못 할 거면 여기 뭐하러 왔냐”, ‘도지사가 군민들 약 올리러 온 거냐”, “당장 가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주민 최모(41)씨는 “진천 사람을 보고 지역 이기주의니, 생떼를 쓰고 있다는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분이 많아져서 안타깝다”며 “격리 시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코앞에 아파트 단지와 어린이집, 초등학교가 몰려있어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진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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