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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늑장 대응이 우한 폐렴 사태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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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우한(武漢) 폐렴’ 국내 네 번째 확진자가 어제 보고됐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8일 만이다. 한국 설(25일)과 겹친 중국 춘절(春節) 기간에 국내외 유동인구가 급증했던 만큼 연휴 이후 확진자가 늘어날 수 있다. 한국에서만 36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보다 우한 폐렴의 전파력이 빨라 강력한 선제 대응이 절실하다.

안이하게 대처하다 검역망 뚫려 #정부는 중앙수습본부 뒷북 가동 #신속하고 과감하게 조치 취해야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설 연휴 마지막 날에야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첫 가동하고 감염병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한 단계 올렸다.  28일 0시부터는 발열·기침 외에 인후통·가래 등의 증상이 있으면 환자로 분류해 대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할 중요한 타이밍을 한 박자 놓친 뒷북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우한 폐렴 진원지인 중국의 긴박한 상황을 보면 바로 옆에 있는 한국이 여유를 부릴 때인지 의문이 든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지난 27일 0시 기준으로 중국·홍콩·마카오·대만에서 2744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80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이 3만2799명이나 되면서 중국 정부는 춘절 연휴를 오는 30일에서 다음달 2일까지로 연장하고, 각급 학교 개학을 연기했다.

더 큰 문제는 뒤늦게 도시 전체가 봉쇄된 인구 1100만 명의 대도시 우한에서 이미 500만 명이 국내외로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중국 언론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첫 환자가 발생한 지난 12월 30일부터 지난 22일까지 항공편으로 6430명이 한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한국의 검역 시스템에는 구멍이 숭숭 뚫렸다. 한국 입국자 4명 중 2명(세 번째와 네 번째 확진자)은 공항 통과 당시 발열과 기침 등 증상이 없었지만, 입국 이후 확진자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입국 이후 차를 타고 병원·호텔·식당·편의점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세 번째 확진자가 국내에서 접촉한 사람은 74명으로 집계됐다. 네 번째 확진자의 경우도 입국 이후 약 닷새 동안 보건당국의 관리를 받지 않아 의료기관을 통한 2차 감시망에도 공백이 드러났다. 그만큼 설 연휴 기간을 거치면서 서울 등 지역사회에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커진 셈이다.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 노력도 소극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당초 우한을 탈출하려는 현지 교민 등의 교통편이 묶였는데도 전세기 파견에 부정적이었다. 미국·일본 등이 전세기를 보내기로 하자 뒤늦게 전세기를 파견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바이러스 차단의 최대 고비였던 설 연휴 초반에 정부는 어디 갔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에야 ‘과도하게 불안해 하지 말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가 사태가 악화하자 하루 만인 27일 우한 지역 입국자 전수조사를 지시했다. 진작 했어야 할 조치를 너무 늦게 시행한 것이다. 이처럼 바이러스 확산 속도보다 정부의 대응이 굼뜨다 보니 청와대 게시판에는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까지 올라올 정도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좌고우면하면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바이러스 확산 위기 때는 다소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선제 대응이 정답이란 과거 경험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