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집권당의 내로남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정부 출범 초 여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새 정부에 대한 무한 힘 싣기였다. 지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은 여권이 아니라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뉘앙스는 다르다. 반대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에 대한 냉소와 자조가 담겨 있다.

학살에 가까운 검찰 인사와 더불어 요즘 여당에선 ‘우리 편’을 향한 총선용 면죄부가 은밀하고 대담하게 발부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제도권 정치를 떠나겠다며 정계 은퇴를 공개 선언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선 당 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이 앞다퉈 출마를 종용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은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에 연루돼 검찰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그런 임 전 실장을 향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모시려고 한다”고 했고, 공천관리위원장은 “마땅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자락을 깔아주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임 전 실장은 검찰 조사 요청을 계속 미루고 있다.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는 그제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에게 적격 판정을 내렸다. 총선 출마에 문제가 없음을 집권당이 공인해 준 셈이다. 윤 전 실장도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감찰 무마를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조국 전 법무장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소장에 유재수의 부탁을 받고 당시 민정비서관에게 감찰 중단을 청탁했다며 윤 전 실장의 이름을 적시했다.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및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연루된 송병기 전 울산부시장,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도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나섰다.

국가 사법권의 엄정함을 아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법의 잣대에 올라 있는 인사들을 향해 정부·여당이 미리 면죄부를 발부하는 꼴이다. 검찰이나 법원엔 면피용 수사나 재판을 하라는 무언의 신호나 다름 없다.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4년 전의 총선에서 지난 정부는 오만과 자충수, 국민을 도외시한 자기들끼리의 계파 싸움으로 자멸했다. 그 잘못과 실수, 오만의 판에서 현 정부가 탄생했다. 여야는 바뀌었지만 오만과 자충수는 지금도 여당을 배회하고 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에 담긴 원망과 분노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민심은 성난 파도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