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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라. 잘있그라 철아" …고 박종철 아버지, 아들 1주기때 남긴 글 보니

중앙일보

입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박종철 열사 33주기를 맞아 열사의 아버지인 고(故) 박정기 선생(1929~2018)이 아들의 1주기를 맞아 직접 작성한 추도사 등이 담긴 일기장 일부를 공개했다고 13일 밝혔다. [연합뉴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박종철 열사 33주기를 맞아 열사의 아버지인 고(故) 박정기 선생(1929~2018)이 아들의 1주기를 맞아 직접 작성한 추도사 등이 담긴 일기장 일부를 공개했다고 13일 밝혔다. [연합뉴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아버지 혼자 한없는 감홰톳 보기(안경) 속으로 눈물을 닦고 닦았으나 그래도 지면이 다 젖었구나. 잘 가라. 잘 있그라. 철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고(故) 박정기씨가 아들의 사망 이후 20년간 써왔던 일기의 일부가 처음 공개됐다. 13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사업회)는 박종철 열사의 33주기를 맞아 유족이 기증한 박 씨의 일기 원문 중 ‘막내 제1주기를 기해 보내는 글’을 공개했다.

해당 부분은 1988년 박 열사 1주기 당시 부산대학교에서 진행한 추모제를 위해 작성된 추모사다. 사업회 측은 박씨가 아들의 기일인 1월 14일 새벽 5시에 완성한 후 일기장에 추도사를 옮겨썼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 글에서 “내 사랑하든(사랑하는) 아들아 이 천지가 다 무너지는 순간들이 허르는(흐르는) 시간 비바람에 천둥이 치고 치드니 아버지 머리에 와닷는(와 닿는) 것 같다”면서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또 “지금도 차디찬 감방에서 동기들이 무서운 용기로 투쟁하고 있구나. 먼저 간 친구, 선배, 후배, 형들에게 이 아버지 말 전해다오. 모두 걱정 말라고, 우리 아버지까지 민주 운동 자신 있다고 하는데 걱정 말라고”라며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의지도 강조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8년 3월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을 찾아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씨의 손을 잡으며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뉴스1]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8년 3월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을 찾아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씨의 손을 잡으며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하고 있다. [뉴스1]

박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가 2018년 7월 세상을 떠났다. 박씨가 별세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청천벽력 같은 아들의 비보를 듣는 순간부터 아버님은 아들을 대신해 때로는 아들 이상으로 민주주의자로 사셨다”며 “박종철은 민주주의의 영원한 불꽃으로 기억될 것이고 아버님 또한 깊은 족적을 남기셨다”고 애도를 표했다.

한편 사업회는 박씨가 별세한 후 1주년이 되는 2019년 7월, 해당 일기장과 박씨가 자서전 준비를 위해 쓴 회고담 1권 등 총 14권을 유족으로부터 전달받아 문서화 작업을 진행했다. 지선 사업회 이사장은 “이번에 공개된 일기장이 남영동 대공분실에 세워질 예정인 민주인권기념관 건립에 있어 소중한 사료로 사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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