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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죽음의 계단' 오르는 그들···제2 김용균 작년 855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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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김용균 막자 〈상〉

제2의 김용균 막자 메인

제2의 김용균 막자 메인

2018년 12월 10일 스물네 살의 청년 김용균씨가 태안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졌다.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됐다.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당시 19)군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법안이 발의된 지 2년여 만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산업현장의 노사 간에는 후속 조치를 두고 말싸움이 난무했고, 그러는 와중에 800명이 넘는 근로자가 또 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 산업현장의 안전시스템 상당수가 위험 속에 방치된 탓이다. 어렵사리 개편된 법안이 16일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건설현장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했다.

16일 법시행, 현장점검 동행해보니 #4층 공사장서 안전장치 없이 작업 #작년 산업현장 사고로 855명 사망 #공사장 앞 고압선에 차단 설비 없어 #철제봉 옮기다 닿으면 감전사 위험 #10층 현장엔 낙하물방지망 하나뿐 #근로자 “불편하다” 안전장비 안 차

“조심해서 걸으세요. 못 같은 거 밟으면 발이 뚫릴 수도 있어요.” 6일 오전 10시 인천시 서구 모 병원 신축공사 현장에 대한 불시점검에 나선 안전보건공단 인천광역본부 고민석 차장은 동행한 기자에게 당부부터 했다. 공사현장 곳곳에 자재와 못,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안전보건공단의 건설현장에 대한 불시점검 결과 안전모 착용이나 추락방지용 난간 설치 같은 기본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비용 절감을 노린 건설업체의 꼼수에 근로자조차 귀찮아 했다. 최정동 기자

안전보건공단의 건설현장에 대한 불시점검 결과 안전모 착용이나 추락방지용 난간 설치 같은 기본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비용 절감을 노린 건설업체의 꼼수에 근로자조차 귀찮아 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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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곳곳에 난간이 없었다. 자재에 걸리거나 발이라도 헛디디면 추락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휴대전화 조명을 켜고 한 발씩 조심스레 이동해야 했다. 한데 김영형 과장은 “이 정도면 양반”이라고 했다. 김 과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다음 점검 장소인 자동차 정비공장 신축공사 현장. 점검반 승합차가 보이자 공사하던 인부들이 주섬주섬 안전모를 쓰기 시작했다. 건축허가 표지판도 없었다. “이것 봐요, 여기서 발 헛디디면 바로 죽는 거예요.” 지상 4층 건물 뒷부분 계단에 난간이 없었다. 아래를 보자 끝도 없이 이어진 아래쪽 계단이 현기증을 불러일으켰다.

한해 25조 … 일자리 늘리기 예산만큼 산재로 날린다

고 김용균씨가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지기 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뉴스1]

고 김용균씨가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지기 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뉴스1]

때마침 하루 공사를 쉬고 있던 인근 주택 공사장. 현장소장이 달려왔지만 안전모를 안 쓰고 있었다. 점검반이 “안전모를 쓰고 오라”고 하자 그제야 후다닥 쓰고 다시 나타났다. 이곳에는 비계(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의 작업을 위해 건물 주위 외벽을 따라 설치한 가설물)가 건물과 연결돼 있지 않았다. 하중이 배분되지 않아 와르르 무너질 위험마저 지적됐다. 건축물 앞에는 고압전선이 있었지만 분리·차단 설비가 없었다. 근로자가 나르는 철제 봉이 닿기라도 하면 감전사할 위험이 있었다. 층간을 잇는 계단의 난간은 줄로 엉성하게 엮었다. 2~5층에는 그마저도 없었다.

안전보건공단의 건설현장에 대한 불시점검 결과 안전모 착용이나 추락방지용 난간 설치 같은 기본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비용 절감을 노린 건설업체의 꼼수에 근로자조차 귀찮아 했다. 최정동 기자

안전보건공단의 건설현장에 대한 불시점검 결과 안전모 착용이나 추락방지용 난간 설치 같은 기본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비용 절감을 노린 건설업체의 꼼수에 근로자조차 귀찮아 했다. 최정동 기자

또 다른 주택 공사현장은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현장소장이 없었다. 인부들은 안전모 없이 일하고 있었다. “안전점검을 나왔다”고 현장에서 공지해도 쓰지 않았다. 계단은 모두 난간이 없었고, 비계는 고정되지 않아 잘못 밟았다간 그대로 추락할 위험이 농후했다.

지난해 안전사고 사망(855명)의 절반(428명)이 건설현장에서 일어났다. 대부분 추락, 부딪힘, 끼임이었다. 안전점검 현장에서 지적된 사안만 제대로 지켜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다. 하지만 상당수 업체가 공사비용을 아끼려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는다.

안전보건공단의 건설현장에 대한 불시점검 결과 안전모 착용이나 추락방지용 난간 설치 같은 기본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비용 절감을 노린 건설업체의 꼼수에 근로자조차 귀찮아 했다. 최정동 기자

안전보건공단의 건설현장에 대한 불시점검 결과 안전모 착용이나 추락방지용 난간 설치 같은 기본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비용 절감을 노린 건설업체의 꼼수에 근로자조차 귀찮아 했다. 최정동 기자

지난해 12월 27일 수도권 동부의 오피스텔(100여 실) 공사현장. 10층 높이까지 진행됐지만 낙하물 방지망은 3층에 한 개뿐이었다. 공사 인부는 “공사비 절감하려 그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낙하물 방지망을 설치하려면 전문업체에 근로자 한 명당 하루 최소 20만원을 줘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건설현장은 방지망 하나만 안 해도 비용이 줄어드니 원가절감 유혹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의 안전의식도 문제다.

지난달 26일 찾은 서울 강북권의 한 대단지 아파트 공사현장. 현장 안전담당 부장의 고함이 들렸다. “안전모를 쓰라”고 소리치자 근로자는 “잠깐 담배 피우느라 벗었다”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추락 방지를 위한 안전고리를 착용하지 않은 근로자도 있었다. 이 근로자는 “겨울이라 옷이 두툼해서 작업하기 불편한데 안전벨트까지 매야 하나”라고 오히려 대들었다. 안전부장은 “매일 안전교육을 하고, 작업환경도 개선했지만 무엇보다 근로자 스스로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정용환·전익진·최현주·신진호·이병준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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